문화재 '화풀이 방화'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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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 곳곳에서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창경궁 문정전(지난달 26일), 북한산(지난달 28일)에 이어 수원 화성 서장대 등 국립공원과 문화유적지 등에서 연이어 일어났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경기도 수원 화성(華城.사적 제3호)의 서장대(西將臺)가 1일 방화로 불에 타 소방대원들이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이날 새벽 불길에 휩싸인 누각 2층의 모습. N-POOL=경인일보 김종택 기자

◆ '화풀이 방화' 늘어나=경찰청에 따르면 방화 범죄는 2001년 1364건에서 지난해 1809건으로 늘어났다. 검거율은 같은 기간 90.4%에서 87.5%로 다소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공장소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화풀이 방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화풀이 방화는 2001년 254건에서 지난해 461건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방화 범죄가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불만이나 분노 표출 수단으로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M스트레스클리닉 오동재(신경정신과) 박사는 "방화범은 대개 사회에 대한 소외감을 많이 느끼며, 내재된 분노나 열등의식을 불을 통해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대 이웅혁(행정학) 교수는 "문화재.국립공원 등 공공장소에 불을 지르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라고 지적했다. 최근 경기 침체가 방화 범죄 증가와 관련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선임연구위원은 "1980년대 인구 10만 명당 한 명에 불과하던 방화범 비율이 90년대 두 명을 넘어 지난해 3.56명으로 늘어났다"며 "이는 일본의 두 배인 수치"라고 말했다.

◆ 방화범 처벌 강화해야=방화 범죄가 늘어나고 피해도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아직 솜방망이다. 지난해 기소된 방화 범죄에 법원이 실형을 내린 비율은 30.9%(235건)에 불과하다. 62.8%(478건)의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상진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주택.상가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크다. 방화는 사회적 범죄로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남대 이창무(경찰행정학) 교수는 "미국의 경우 방화는 연방수사국(FBI)이 인명과 재산을 함께 손상하는 중요 범죄로 분류한다. 양형기준도 강도보다 높고 납치.유괴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익진.이철재 기자

◆ 방화=건물이나 교통수단 등에 의도적으로 불을 질러 피해를 주는 범죄다. 이 불로 사람이 다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사망에 이를 경우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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