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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7화. 친숙한 환수, 도깨비

중앙일보

입력

7화. 친숙한 환수, 도깨비


친해지고 싶다···순진하고 약속 잘 지키는 장난꾸러기

드라마에서 '도깨비'로 분한 배우 공유. 옛이야기 속엔 이처럼 잘생긴 도깨비도 적지 않다.

드라마에서 '도깨비'로 분한 배우 공유. 옛이야기 속엔 이처럼 잘생긴 도깨비도 적지 않다.

옛날 옛적에 혹부리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노래를 잘했는데, 하루는 늦은 밤 산속 오두막에 머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도깨비들이 나타나 노래를 잘 부른다며 비결을 알려달라고 했죠. 할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혹 때문이라고 했고, 도깨비는 혹을 가져가면서 보물을 주었어요. 이 소문을 들은 옆 마을 욕심쟁이 혹부리 할아버지는 자기도 같은 방법을 써서 보물을 얻고자 했죠. 하지만 도깨비들은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며 갖고 있던 혹까지 붙이고 가버렸습니다.

전래동화로 유명한 ‘혹부리 영감’인데요. 한국에는 예로부터 도깨비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도깨비 감투라든가, 도깨비방망이 같은 신비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근래에도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죠. 친근하기 때문일까요? 도깨비는 동화나 설화만이 아니라 여러 창작 작품에서 등장하며, 동요로도 소개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신비한 도깨비방망이를 노래하는 이 동요는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거예요.

도깨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말로 도깨비가 뭔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도깨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예로부터 내려온 도깨비 이야기가 많다고 하지만, 사실 얼마 안 되는 동화로밖에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도깨비는 서양으로 보면 트롤이나 고블린, 코볼트 같은 장난꾸러기 요정 같은 존재입니다. 덩치는 크고 무섭게 생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춤과 장난을 좋아하고 약속을 잘 지키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과는 항상 정정당당하게 대결하는 존재입니다. 그다지 심한 짓은 하지 않지만, 때로는 사람을 해치고 위협하거나 심지어 죽게도 하죠. 동시에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개암나무 열매 깨무는 소리에 놀라 보물을 버리고 달아날 만큼 순진하기도 해요.

재미있는 점은 도깨비 이야기마다 그 성격이나 특성이 매우 다르다는 점입니다. 모습도 천차만별이죠.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것은 파란 피부에 뿔이 나 있으며, 호랑이 가죽으로 된 팬티를 입은 모습이지만, 옛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그와는 또 다르게 생겼다고 합니다. 도깨비의 정체가 모호한 것은 그만큼 도깨비 이야기가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이나 일본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요괴 이야기가 뒤섞여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한국 설화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본 설화라고 하는데요. 한국 도깨비가 아닌 일본의 요괴 ‘오니’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에 전해지면서 한국 설화라고 잘못 인식되었다는 거죠. 그 모습 역시 일본 그림책 같은 것을 통해 전해진 오니 모습이 그대로 옮겨지면서 지금처럼 뿔이 달린 무서운 괴물 모양이 되었다는 거예요. 뾰족한 송곳니에 눈이 하나뿐인 경우도 적지 않고, 가시가 난 방망이를 든 오니는 그야말로 사악한 괴물의 모습 그 자체죠.

하지만 도깨비는 다릅니다. 앞서 소개했듯 도깨비는 풍자적이며 해학적이고 유쾌한 종족입니다. 옛이야기에선 키가 크다는 것을 빼면 사람과 별 차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이따금 짐승처럼 털이 잔뜩 난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후기로 갈수록 조금 험상궂지만 잘생긴 모습으로 등장하니, 드라마에서 나온 모습도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도깨비방망이나 복장도 오니와는 아주 다릅니다. 방망이는 가시가 달린 몽둥이가 아니라 나무망치 같은 느낌이고, 한복을 입고 패랭이를 쓴 모습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한밤중에 마주치면 사람하고 구분하지 못할지도 모르기에,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죠. 일본에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사람을 해치는 오니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지만, 한국의 도깨비는 동화나 설화에서 나오듯 손쉽게 친해질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모든 도깨비가 그처럼 순박하고 친근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도깨비가 등장하는 창작 작품이 적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드라마 ‘도깨비’나 소설 ‘눈물을 흘리는 새’ 같은 작품이 있지만, 오니뿐 아니라 수많은 요괴 만화로 전 세계 사람을 매료시키는 일본이나, 코볼트나 트롤 작품이 넘쳐나는 서양과 비교할 때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부 알려진 작품에서 등장하는 도깨비 모습이 옛이야기 속 그것과 차이가 있다는 점도 아쉽지요. 가령 도깨비 문화를 알리고자 시작했다는 섬진강 도깨비 마을에도 머리엔 날카로운 뿔이 나고 반쯤 벌거벗은 채 뿔 방망이를 든 조각상만 잔뜩 늘어서 있으니까요.

도깨비는 매우 일찍부터 한국에서 전해진 요괴입니다. 우리와 함께 존재해 온 친숙하고 가까운 존재죠. 그런 만큼 우리네 도깨비의 본 모습을 찾고, 그것을 알리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도깨비는 우리네 사람들의 즐겁고 재미있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니까요.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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