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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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년 같으면 10월은 문화의 달이라고 해서 문화진흥의 목청이 드높았으련만 88년의 10월은 올림픽의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국정감시다,5공 비리다 해서 순수한 의미의 문화와는 조금 다른 세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화란 무엇이냐는 것을 새삼스럽게 따져볼 필요는 없다. 정치문화, 노동문화, 생활문화라는 말까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문화란 바로 인간존재의 양태이며 사회의 격조일 것이다.
우리는 올림픽을 치르면서 오로지 뛰고 싸우고 겨루기만 한 것이 아니다. 평화·화합·협조를 위해 문화올림픽도 치렀다.
미술·음악·조각·연극 등의 문화축전이 하루에도 10건씩 개최되었고 세계의 석학들이 대거 참여한 국제학술회의, 세계의 문인들이 자리를 함께 한 펜클럽 등 마치 우리는 거대한 세계문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있는 느낌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 다양하고도 낮선 외래문화는 우선 양적으로 우리를 압도했고, 질적으로도 독일의 최첨단 전위예술에서부터 볼쇼이발레단에 이르는 풍부하고도 수준 높은 예술행사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번 문화행사가 올림픽 무드조성을 위한 전시용이었고 외국관광객을 위한 관광문화였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을 소지도 없지 않아 있다. 또 엄청난 관람객과 청중이 동원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일 뿐이고 속물적 사치성 문화참여라는 일시적 가수요 인구일 뿐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화란 것은 지적모험에서 출발하며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속물적 욕구는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시해야할 사항은, 다양한 낯선 문화와의 갑작스런 조우를 일과성의 충격으로만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문화적 편향성을 조정하고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하고 나아가 우리의 의식, 우리의 가치관을 보편성 있게 다듬어나가는 기반으로서의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 동안의 우리 문화는 폐쇄회로의 닫힌 문학사회였다. 누구나 알고있듯이 문화는 외래문화의 도전과 고유한 자생문화의 응전이라는 상호교감을 통해서 변용·생성·발전의 과정을 거친다.
동과 서의 문화를 한자리에서 동시에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은 바로 이 점에서 충격일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의 편향된 문화시각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예술은 체제와 관계없이 살아 남는다』고 말한 볼쇼이발레단 총 감독의 표현은 우리에게 많은 시준를 던지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두드러졌던 러시아와 동구권 문화와의 접촉은 체제와 이념을 떠나 타 문화권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깊이 새겨두어야 할 추억이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고유문화에 대해 지극히 소홀했고,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껏 우리는 이른바 순수문화와 민중문화라는 2분 법 도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지 저지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규제일변도의 관치문화에서 과감히 벗어나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인 세계문화와의 만남을 극대화 시켜나갈 수 있는 다각적인 문화정책의 제시를 필요로 한다. 정제된 한국문화의 육성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문학적 체험은 긴요하다. 이것이 곧 닫힌 문화에서 열린 문화에로 나아가는 길이다.
문화를 생각케 하는 계절 속에서, 우리는 그 동안 체험한 세계를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존재양태, 사회적인 격조로 소화하는 과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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