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漢字, 세상을 말하다] 毋亡在莒<무망재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92호 34면

나라의 부침이 계절마다 뒤바뀌던 춘추(春秋)시대 산둥(山東) 반도 거(莒) 땅에 얽힌 이야기가 『사기(史記)』 ‘전단(田單) 열전’에 전한다. 북방의 강국 연(燕)나라 명장 악의(樂毅)가 제(齊)나라를 침략했다. 거성(莒城)과 즉묵(卽墨)을 제외한 전국이 짓밟혔다. 제나라 하급관리 전단이 나섰다. 반간(反間)계로 악의부터 낙마시켰다. 이어 소 1000여 마리 꼬리에 기름 적신 갈대를 매달고 불을 붙여 야습을 감행했다. 기세를 몰아 제나라 고토 수복에 성공했다.

거(莒)성에 피신했던 제 환공(桓公)이 왕위에 오른 뒤 관중(管仲)과 포숙아(鲍叔牙), 영척(甯戚)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다. 포숙아에게 돌연 장수(長壽) 비결을 물었다. “공께서는 거 땅에 피신했던 일을 잊지 말고(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 관중은 노나라에 체포됐던 일을 잊지 말며, 영척은 소를 먹이며 수레 밑에서 지내던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직간(直諫)’편은 환공이 춘추 5패의 첫 패자(覇者)가 된 이유로 이 간언을 꼽았다. ‘무망재거(毋亡在莒)’는 이후 고난을 되새겨 옛 땅을 되찾는다는 성어가 됐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근무했던 샤먼(厦門)과 1.8㎞ 떨어진 진먼다오(金門島)에 다녀왔다. 진먼을 거성으로 삼아 대륙을 수복하겠다던 장제스(蔣介石)의 캐치프레이즈 무망재거가 곳곳에 새겨 있었다. 1949년 10월 중공군 9000명의 야습을 물리친 구링터우(古寧頭) 전적지와 1958년부터 20년간 47만 발의 포격을 피한 자이산(翟山) 갱도 등 진먼은 현대판 거성으로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압록강 변의 번화한 중국과 황량한 북녘땅이 샤먼 마천루와 진먼의 한적함과 묘하게 닮았다.

대만이 한때 무망재거를 꿈꿨다면 중국의 물망초심(勿亡初心)은 현재 진행형이다. 1921년 공산당 창당 초심을 잊지 않고 세계를 제패(制覇)하겠다는 야심이다.

2015년 싱가포르에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당수가 만나 진먼 특산 고량주를 함께 마셨다. 3년이 흘렀지만, 양안 관계는 악화 일로다.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북미가 양안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할 묘책 마련이 시급하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