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73·경기 의정부갑·6선) 의원이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13일 선출되면서 어느 때보다 ‘중량감’ 있는 국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사무처 최고위직인 사무총장(장관급)에 유인태(70) 전 의원이 내정되면서 그런 기대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문 의장은 총투표수 275표 중 259표(94.2%)의 찬성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국회법에 따라 문 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 됐으며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의장직을 맡는다.
정치권에서는 문희상 의장-유인태 사무총장은 그 어느 때보다 입법부의 중책을 잘해낼 ‘궁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각 ‘포청천’과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가진 두 사람은 여의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좋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당 의원에게도 두 사람에 관해 물으면 “할 말은 하고 풍류도 아는, 여의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치인”이란 찬사가 되돌아온다.
‘존경받는 베테랑 정치인’인 두 사람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현역의원 하위 20% 컷오프(공천 배제) 원칙에 따라 공천이 배제된 아픔도 함께 겪었다. 문 의장은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략공천을 하는 방식으로 구제가 됐지만 유 전 의원은 끝내 당의 부름을 받지 못해 서울 도봉을 지역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런데도 유 전 의원은 당에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고 한다. 오히려 물갈이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도 임수경 전 의원 등 고배를 마셔 슬퍼했을 동료 의원들에게 저녁을 사며 달래는 역할을 했다. 여느 정치인처럼 당 지도부가 모인 회의실로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거나 취재진에게 하소연하기보다는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 왔다”는 격언 같은 소감을 내놨다.
두 사람은 문재인(65)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공통점도 있다. 노무현 청와대가 처음 꾸려졌을 때 비서실장이 문희상 의장, 정무수석이 유인태 전 의원,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 연배로 보나 당시 직제로 보나 문 의장과 유 전 의원이 문 대통령의 선배였다.
입법부에 포진한 ‘청와대 빠꼼이들’
그래서 20대 후반기 국회가 전반기와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같은 편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두 사람의 스타일이 의회주의의 수준을 높이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고공 지지율로 인해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청와대로 기울어진 행정부와 입법부의 균형추를 조절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여기에 문 의장의 비서실장(차관급)에는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임명됐다. 박 전 대변인은 6·13 지방선거에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안희정 전 지사의 미투 파문에 이은 본인의 스캔들로 후보를 사퇴했다. 문 의장의 당선으로 국회가 복귀 무대가 된 셈이다. 문 대통령 곁을 지켰던 박 전 대변인이 합류하면서 청와대의 생리를 속속들이 아는 ‘청와대 빠꼼이’ 출신들이 입법부에 포진하게 됐다.
주변의 기대를 의식해서인지 문 의장은 이날 당선 직후 ‘의회주의’를 강조했다. 문 의장은 “새 정부 출범 1년차는 청와대의 계절이었지만 2년차부터는 국회의 계절이 돼야 국정이 선순환할 수 있다”며 “개혁·민생입법의 책임은 정부·여당이 첫 번째이고, 야당 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협상 태도를 갖추고 적대적 대결이 아닌 경쟁적 협조 자세가 필요하다”며 “촛불혁명을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의회주의를 만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포청천’ ‘엽기 수석’ 된 이유는
문희상 의장의 별명이 ‘포청천’이 된 건 복합적이다. 1990년대 안방을 사로잡았던 인기 중국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과 얼굴이 닮았다. 동시에 민주당이 어려울 때마다 문 의장은 구원투수로 나서 19대 국회에서만 비상대책위원장을 두 번 맡았다. 합리적 중재자 역할에 능하기 때문이었다. 중국 송나라 때의 훌륭한 판관 포증(包拯)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속 인물의 외향과 역사 속 역할이 문 의장과 닮아 ‘여의도 포청천’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유인태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할 때 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최고 권력자 앞에서 수시로 고개를 떨구면서도 훌륭한 입담을 가진 그에게 사람들은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붙였다. 물론 그는 “졸면서도 들을 건 다 듣는다”고 주장을 하곤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유 전 의원은 사형제 폐지 운동에도 앞장섰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