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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포트]‘교육실험’에 혼란·갈등만 남긴 김상곤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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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송파구청이 운영하는 생태체험교실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지금의 교육부는 미래사회의 주축이 될 아이들을 위해 어떤 농사를 짓고 있을까. [뉴스1]

지난 5월 송파구청이 운영하는 생태체험교실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지금의 교육부는 미래사회의 주축이 될 아이들을 위해 어떤 농사를 짓고 있을까. [뉴스1]

“지금의 중3 학생은 미래 혁신교육 1세대가 될 것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현 중3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교·대학 입시 개편 작업에 혼란이 일자 내놓은 메시지죠. 그러나 정작 해당 학생과 학부모는 ‘1세대’가 된 것을 반기기는커녕 ‘실험용 쥐’가 됐다며 큰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김 부총리와 정책 수요자인 학생·학부모는 왜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인식을 갖게 된 걸까요? 지난 1년간 김 부총리가 추진해온 교육정책을 바탕으로 교육부와 학생·학부모가 대립하게 된 원인과 앞으로의 대안을 살펴봅니다.

[김상곤 vs 학생·학부모 갈등의 원인]

①혼란 부추기는 오락가락 교육 정책
②말로는 소통 강조, 실제론 ‘답정너’
③‘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無원칙
④미래비전보다 교육이념 실험에 집중

①혼란 부추기는 오락가락 교육 정책

 지난 달 19일 방한한 폴 킴 미국 스탠퍼드대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엔 교육부가 없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지나친 통제와 오락가락 정책으로 교육현장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죠. 그는 “미래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대학과 학교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정부는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교육부는 오락가락 정책으로 현장의 혼란을 빚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최근 헌법재판소가 “자율형사립고 지원자의 일반고 중복 지원을 허용하라”는 취지의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입시를 5개월 앞둔 중3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앞서 교육부는 자사고·외국어고 폐지의 일환으로 이 학교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일반고에 중복 지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정부의 외국어고, 국제고 폐지를 규탄하는 학부모들. [중앙포토]

정부의 외국어고, 국제고 폐지를 규탄하는 학부모들. [중앙포토]

 또 중 3학생이 치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방식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죠. 원래는 지난해 결정됐어야 하지만 교육부가 1년 유예하면서 현재는 국가교육회의에 공이 넘어간 상태입니다. 하지만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이냐 상대평가 유지냐를 놓고 찬반이 크게 엇갈리면서 어떤 방식으로 결정될 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3 자녀를 둔 오모(46)씨는 “혁신 1세대가 아니어도 좋으니 입시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합니다.

②말로는 소통 강조, 실제론 ‘답정너’

 김 부총리는 늘 ‘소통’을 강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 정책에 대해선 국민 의견을 듣겠다며 ‘정책숙려제’를 도입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각종 회의체를 꾸려 의견을 수렴합니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 A씨는 “말이 소통이지, 사실상 답을 정해놓고 의견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게 사립대 입학금 폐지 문제입니다. 당시 교육부는 이 문제가 이슈화 되고 몇 달 만에 ‘입학금 폐지를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입장은 다릅니다. A씨는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어 대학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교육부는 대학과의 논의에 진전이 없자 협의체에 학생대표를 참여시켰습니다. 당시 협의체에 참여했던 사립대 대표단은 “학생들이 있어 대학의 입장을 명쾌하게 밝히기 어려웠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유은혜(왼쪽), 노웅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 중인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유은혜(왼쪽), 노웅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 중인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김 부총리의 ‘답정너’는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불만입니다. 지난 1월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여론의 불만이 커지자 여당 의원들이 적극 만류하며 1년간 유예를 결정했지만 여당 내에선 ‘불통’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유은혜 의원은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여당 의원들이 유보를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사실상 ‘저지’였던 셈이죠.

③‘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無원칙

 지난 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조합원 2000여명이 참여해 ‘법외노조 철회’를 주장하며 ‘연가투쟁’을 벌였습니다. ‘연가투쟁’은 평일에 교사가 연가를 내고 파업·집회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강력히 규제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가투쟁’에 앞서 교육부는 전국 학교에 공문을 보내 집회 참가 등 목적으로 조퇴·연가 신청할 경우 이를 불허하고, 허락한 교장에겐 책임을 묻겠다는 강도 높은 지침을 내렸었죠.

 하지만 지금의 교육부는 입장이 확 바뀌었습니다. 김 부총리는 경기도교육감 시절부터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를 적극 지지해 왔습니다. 이번 연가투쟁 때 교육부는 “교원의 복무관리를 철저히 해달라”는 원론적 입장만 공지했을 뿐 자세한 내용이 빠져 있었죠. 사실상 교육부가 ‘연가투쟁’을 묵인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전교조도 “교육부의 공문 내용이 연가투쟁 참석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교육부와 전교조의 입장에는 충돌 지점이 없다”는 논평을 냈죠.

지난 6일 법외노조 철회 등을 주장하며 연가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 [뉴스1]

지난 6일 법외노조 철회 등을 주장하며 연가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 [뉴스1]

 하지만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부 정책과 법률 적용은 일관성 있게 지켜져야 하는데, 갑자기 원칙이 달라지면 누가 교육부를 믿고 지지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합니다. 특히 “연가투쟁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도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교사와 학부모 등의 생각이죠. 결국 김 부총리는 자신만의 엄격한 원칙과 철학을 가진 소신주의자이지만, 그 때문에 교육부의 원칙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④미래비전보다 교육이념 실험에 집중

 김 부총리가 취임 후 처음 열정을 쏟은 것은 ‘교육 적폐’ 해소, 즉 국정교과서 진상조사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할 일을 교육부가 한다며 비판 여론도 높았죠. 실제로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선 진상조사 이슈가 뜨겁게 거론됐습니다. 당시 전문가들도 “취임 100일 간 기억나는 게 국정교과서 진상조사뿐”(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교육에 대한 미래비전이 안 보인다”(신동원 휘문고 교장) 등 비판을 내놨습니다.

 자신과 이념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학교정책실장과 정책보좌관 등 요직에 앉힌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교육부의 가장 중요한 산하기관으로 수능을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는 김 부총리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활동을 함께한 성기선 교수가 임명됐습니다.

 또 지난 1월에는 멀쩡한 ‘인성교육과’를 없애고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진보진영에선 ‘인성교육’ 대신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된 것과 달리 김 부총리는 경기도교육감 시절 전담 과를 신설해 교과서를 만드는 등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했습니다.

국가교육회의 위원 겸 그 산하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진경 위원. 그는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뉴스1]

국가교육회의 위원 겸 그 산하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진경 위원. 그는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뉴스1]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었던 국가교육회의 구성도 문제가 됐죠. 김 부총리는 대선 공약의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교육회의의 민간위원 중 다수가 전교조 출신 등 진보 인사로 채워지면서 이념 편향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국가교육회의에 현직 교사와 학부모 등 현장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편향적이 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합니다.

전망과 대안

 앞서 폴 킴 교수는 스탠포드의 예를 들며 “실리콘 밸리에선 주 단위로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론 한국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죠.

 그러나 한국에선 21세기를 살고 있는 학생과 달리 학교는 여전히 20세기, 교육부는 19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지나친 평등 교육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축소하려는 움직임 등이 미래 인재를 키우는데 독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폴 킴 교수는 “한국 교육은 틀린 질문에도 옳은 정답을 내놓는 데 있다”며 “앞으로의 교육은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폴 킴 스탠포드대 교수. [중앙포토]

지난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폴 킴 스탠포드대 교수. [중앙포토]

 이를 위해선 학교와 교사, 학생의 자율성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아울러 ‘티칭(teaching)' 중심에서 ’코칭(coaching)' 중심으로 교사의 역할을 바꾸고 이런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교대·사범대를 키워야 한 다는 게 폴 킴 교수의 제안입니다. 그는 “이미 인공지능 교사가 현실로 다가왔다”며 “교육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생각거리]

 김상곤 부총리가 말하는 ‘혁신교육 1세대’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최종 목적지는 옳더라도 그 방법에 대한 이견들이 많다면, 그 세부 과정들을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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