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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미래 사회 의사 역할도 달라질 것…다양한 '딴짓' 통해 길 찾아 가죠

중앙일보

입력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20~30년 후 의사라는 직업은 과연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직업으로 남아있을까요. AI(인공지능)가 질병을 진단하고 로봇이 수술을 집도하는 시대가 오면 의사의 역할은 달라질 겁니다. 미래에는 “SF영화에서처럼 진단과 치료가 의료캡슐 안에서 이뤄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의사가 있는데요. ‘딴짓하는 의사’ 김포 뉴고려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38)씨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래의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죠.

라디오 방송·카 피시 판매…의대생의 딴짓 
석재씨는 가천대 의대 입학 후부터 줄곧 다양한 ‘딴짓’을 시도해 왔어요. 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작한 라디오 음악방송은 의대생 시절 내내 이어갔고, 인턴 때는 틈나는 대로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카 피시(Car PC)를 조립해 판매했죠.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 ‘딴짓’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대학병원 응급실과 달리 2차병원 응급센터에서는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나머지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거든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⑭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

레지던트 시절에는 바쁜 와중에도 의학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했어요. 2007년과 2009년엔 MBC 의학다큐멘터리 '닥터스', 2008년에는 EBS '극한직업'에 출연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거나 의사라는 직업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어요. 시간적 여유가 생긴 레지던트 4년차부터는 서울 영등포지역 노숙인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맥이 넓어졌고 전공 관련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됐어요.

2007년 MBC ‘닥터스 - 길병원 응급의료센터 편’에 출연한 모습.

2007년 MBC ‘닥터스 - 길병원 응급의료센터 편’에 출연한 모습.

“인천 길병원 응급실의 경우 연인원 10만 명의 환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응급실 중 환자 규모로는 3~4위 정도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별의별 희한한 케이스들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MBC '닥터스-길병원 편’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됐는데 한 회 방송만으로 지나쳐버리는 것이 아까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블로그에 정리했어요. 40편에 이르는 에피소드는 원래 목표였던 드라마 대본으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2015년 3월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storyfunding.daum.net/project/168)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죠. 의료계 내부 이야기를 다룬 점을 두고 ‘신선하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펀딩 목표금액의 2배를 달성했어요. 지난해엔 작가 타이틀도 얻었습니다. 그간 공개했던 글을 모아 『응급실에 아는 의사가 생겼다』를 출간했죠. 이후 글쓰기 플랫폼인 카카오 브런치와 네이버 맘&키즈 섹션에 ‘엄마·아빠를 위한 응급실 이야기’라는 글을 연재 중이에요.

석재씨의 행보는 보통의 의사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가 끊임없이 ‘딴짓’을 시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008년 EBS ‘극한직업 - 응급실의사 편’에서 정신 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는 장면.

2008년 EBS ‘극한직업 - 응급실의사 편’에서 정신 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는 장면.

“어릴 적부터 승부욕과 끈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뭐든 끝을 볼 때까지 하는 편이었죠. 초등학생 때는 공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상자대회, 글라이더대회 같은 대외 활동에 열심이었어요. 뭐든 한 가지에 꽂히면 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는 성향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의대 공부는 암기력이 무척 중요했어요. 석재씨는 과학·수학을 좋아했지만 암기력은 나쁜 편이었다고 해요. 매 학기 학점은 바닥을 기었고 석차도 꼴찌를 오락가락했지만 그는 라디오 음악방송을 6년 동안 놓지 않았어요. 심지어 본과 3학년 때는 아예 휴학까지 하고 안양에 사무실을 얻어 사업 확장에 매달리기도 했죠.

“난파선이라는 이름의 개인 라디오 음악방송이었어요. 팟캐스트의 라이브 버전이라고 볼 수 있죠. 가요 채널과 전문 음악 채널 2개를 운영했는데 한때 멤버가 30여 명에 이르기도 했어요. 게임회사를 찾아가 우리 방송을 프로그램 전면에 걸어달라며 협상을 벌이기고, 위성DMB 채널권을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애쓰기도 했어요.”

석재씨는 라디오 음악방송을 운영했던 6년 동안 의대생으로서 겪어보기 힘든 다양한 인간관계는 물론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레지던트 시절 TV방송 출연에도 도움이 됐어요. MBC '닥터스' 영상은 최근 다시 유튜브 업로드를 시작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실패를 통해 배운다… ‘딴짓’에 후회는 없다
의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공감능력과 배려심’을 꼽았습니다.

요셉의원에서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는 모습.

요셉의원에서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는 모습.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추구한다면 의사를 뽑을 때 성적이 아니라 공감능력이 있고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야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니까 의사가 되려 하고, 공부만 잘해서 다른 사람들과 접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일생에 한두 번 겪을 만한 큰일을 겪는 것인데 의사가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환자를 본다면 과연 제대로 된 의료행위가 이뤄질까요.”

그는 레지던트 2년차에 처음 요셉의원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치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이 된 동생이 2008년 방송된 요셉의원 관련 다큐를 본 후 ‘함께 봉사활동을 해보자’며 석재씨를 이끌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응급실에서 24시간 일하고 5시간 쉬는 쳇바퀴 도는 생활을 반복하던 터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음의 짐으로 안고 있다가 레지던트 4년차 때 여유가 좀 생기면서 다시 요셉의원을 찾았어요.

요셉의원에서는 평균 20년 이상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50여 명의 의사들이 번갈아가며 진료를 하고 있죠. 9년째 봉사를 하는 석재씨는 “그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 결국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 때문에 중독된다고 합니다. 제가 의료봉사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고 살고 있구나, 내가 남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게 있구나’하는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2017년 EBS ‘메디컬 다큐 7요일 - 쪽방촌의 기적 요셉의원 편’에 출연한 장면. 우연히 딸과 함께 봉사진료 간 날 촬영이 있어서 함께 출연하게 됐다.

2017년 EBS ‘메디컬 다큐 7요일 - 쪽방촌의 기적 요셉의원 편’에 출연한 장면. 우연히 딸과 함께 봉사진료 간 날 촬영이 있어서 함께 출연하게 됐다.

‘방송·책 그거 뭣 하러 하냐, 쌀 한 톨 나오냐’라는 비판에도 그가 여러 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은 바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학회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사로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거죠.

“제가 휴학했을 때도 사람들은 ‘의대를 왜 쉬냐, 남들은 빨리 못 돼서 안달인데’ ‘전문의 연봉이 얼만지 아냐, 1년 일찍 전문의를 했으면 얼마를 더 버는데’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 하지만 실패를 해봐야 그게 잘못한 건지 잘한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실패하면 재기가 쉽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모험하기 힘든 사회가 돼가는 거죠.”

‘딴짓’을 해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해요. 방송에 나가서도 떨지 않고, 병원 내에서 직원 행복을 위해 협상을 할 때도 당당하죠. 또 학회 활동을 통해 의사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도 있고요.

“유전자공학이 더 발달하면 말 그대로 병에 안 걸리게 하는 시대가 올 텐데, 의사가 병만 치료하는 일을 해서는 도태될 겁니다. 그런 시대에 의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저 역시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럴수록 ‘딴짓’을 많이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그리고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커지게 됩니다. 딴짓을 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아요. 나중에 반드시 자산이 됩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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