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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처럼 웃통 깐 여성 20년 안에 넘칠 것…불편해도 세상은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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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붉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6만 명, 경찰 추산 1만9000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붉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6만 명, 경찰 추산 1만9000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한국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분출된다. 지난달 2일 강남역에서 있었던 토플리스(상의탈의) 시위는 불꽃페미액션이 주도했다. 이들의 활동은 ‘왜?’에서 시작한다. ‘여학생 교복은 왜 이렇게 불편해?’ ‘왜 보온도 안 되는 불편한 속옷을 입어야 하지?’ ‘겨드랑이 털은 왜 깎아?’ ‘왜 우리는 운동할 때 남자들처럼 웃통 못 까?’ 사회 구성원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옮긴다. 이들의 행동에 누군가는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들은 더 거침없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낸다.

뉴페미니스트<상> 그들은 왜 #상의탈의 시위 ‘불꽃페미액션’ 2인 #왜 운동 때 남자처럼 웃통 못 까나 #분노의 수다 떨다 아이디어 얻어 #한국 남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페미니즘은 평평하게 만들자는 것

2일 토플리스 시위도 그랬다. 경찰이 이불로 참가자들의 몸을 재빨리 가려 정작 상의가 노출된 건 몇 초 안 됐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저희가 ‘하나, 둘, 셋’ 외치고 까자마자 정말 빨리 가려 주시더라고요. 그냥 ‘하나, 둘’ 할 때 바로 오픈할 걸 그랬어요.” 지난달 19일 서울 연남동에서 만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과 ‘검은’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과의 일문일답.

지난달 19일 만난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선물’(왼쪽)과 ‘검은’. 둘은 2년 전부터 불꽃페미액션에 합류해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했다. [변선구 기자]

지난달 19일 만난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선물’(왼쪽)과 ‘검은’. 둘은 2년 전부터 불꽃페미액션에 합류해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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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를 해 달라.
선물(이하 선)=다음 학기에 복학 예정인 휴학생이다. 20대 페미니스트다. 해양생물을 안 먹은 지 1년 반 정도 됐다.

검은(이하 검)=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다. 역시 페미니스트다. 선물과 반대로 유제품과 계란, 어류만 먹는 페스코 채식을 하고 있다.

불꽃페미액션은 어떻게 탄생했나.
=창립 멤버는 아닌데 2~3년 전 지인들끼리 농구하려고 모였다더라. 원래 이름이 ‘불꽃여자농구단’이었다

=‘왜 여성에겐 운동장이 없나, 우리의 운동장을 갖자’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그러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 운동(농구)도 하고, 저 운동(여성운동)도 해보자며 ‘불꽃페미액션’을 만들었다. 현재 회원 수는 200여 명이다. 주기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20명 정도인데 상근 활동가는 따로 없다. 회원들 중 우즈(woods)라고 불리는 활동가들이 주1~2회 모여 회의를 한다.

두 사람 입문 계기도 강남역 사건이었나.
=강남역 사건으로 ‘여성혐오’라는 의미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온라인에서 이 사건이 여혐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도 많이 했다. 논쟁에서 이겨야 하니 책도 많이 읽었다.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익혔고 불꽃페미액션에도 합류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안전하게 밤에 돌아다닐 권리’를 외치는 달빛걷기 활동에 참여했는데 굉장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내가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공포와 폭력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 10번출구에 마련됐던 피해 여성 추모 현장. [중앙포토]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 10번출구에 마련됐던 피해 여성 추모 현장. [중앙포토]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나오는 건가.
=분노의 수다를 떨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온다. 저번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고학력 여성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연구 분석을 내놨는데 그때 우리가 분노의 대화 끝에 내건 피켓 문구가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우리가 애 낳나. 고양이랑 살지’였다.

=토플리스 시위도 그랬다. 페이스북이 우리 계정의 반라 사진을 삭제한 날 다들 화가 나 채팅방에서 말했다. ‘야, 그냥 까자!’ 그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이틀 뒤에 시위했다.

이렇게 주목받을 거라고 예상했나.
검, 선=깜짝 놀랐다. 페이스북이 그렇게 바로 사진을 복구해 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반응도 예상보다 정말 컸다. 갑자기 준비한 것치곤 성공적인 시위였다.
하지만 공격도 많이 받았다.
=제 사진을 클로즈업한 뒤 ‘이거 설마 뱃살이냐?’고 쓴 글도 봤다. 상처를 좀 받았는데 어차피 그들과 난 모르는 사이고, 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지 않나.

=이제 포털에 불꽃페미액션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불꽃페미액션 원본’이 나온다. 이 시위 또한 한국에선 이렇게 소비되는구나 싶어 정말 황당했다. 청와대 청원 글 중엔 ‘불꽃페미액션을 사형시켜 달라’는 글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20년 안에 남성들처럼 해변에 웃통 깐 여자들이 있을 거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고 있고 여러분은 그 흐름에 잠깐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39;불꽃페미액션&#39;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39;불꽃페미액션&#39;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도 높다.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메갈리아의 탄생? 대화 화자의 성별을 뒤집어 일상의 성차별을 보여 줬던 ‘미러링’ 운동이 메갈리아에서 시작됐다. 미러링으로 여성들은 자신이 받아 온 억압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격한 미러링(성별 등 대상을 반대로 표현하는 언어 방식)은 비판도 받는데.
=미러링은 하나의 놀이적 전략이다. 효력이 다하면 종식될 거라 본다. 개인적으로 ‘재기해’(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비하한 표현) 같은 고인 모독 표현은 비판받을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미러링 때문에 페미니즘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건 핑계다.
지난달 19일 서울 연남동에서 만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39;선물&#39;(왼쪽)과 &#39;검은&#39;. 변선구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연남동에서 만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39;선물&#39;(왼쪽)과 &#39;검은&#39;. 변선구 기자

남녀 대결 구도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애초에 대등한 싸움이 아니다. 유리천장, 성별 임금격차 등 여성혐오는 여성을 사회·경제적으로 억압할 수 있지만 남성을 혐오하는 시선은 그들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페미니즘은 이걸 평평하게 맞추려는 거다.

=가부장 사회의 문제를 페미니즘 반대 이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일 답답하다. 며칠 전 키배를 했는데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남성보다 적다’는 통계를 들고 와서 ‘여자들이 놀고 있다’며 비난하더라. 왜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는지는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제일 하고 싶어하는 이야긴데….

너무 예민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지난해 촛불집회 때 여성 참가자들의 성추행 제보가 이어져 ‘페미존’을 만들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미스박’이라 한 사회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우릴 조롱했다. 그러나 우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진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장 내가 포함되지 않은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바꾼 세상이 내 언니·동생에게 영향을 미치고 바꾸지 못한 세상에선 누군가가 계속 고통 받는다면? 난 지금 바꿔야겠다. 

홍상지·성지원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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