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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 대통령 남북 공동기념사업에 광복절 빠진 이유…‘건국’ 이견 때문

중앙일보

입력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던 6·15 공동성명 기념식에 이어 기대를 모았던 8·15 광복절 기념식의 공동 행사 개최까지 불투명해졌다. 남북은 통일 농구 행사를 비롯한 동시다발적 대화 채널을 이어가면서도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합의했을 뿐 공동 행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시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3일 ‘3ㆍ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이하 기념사업 추진위)’ 출범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4·27 회담에서) 3ㆍ1 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기념사업 추진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며 추진위에 후속 작업을 지시했다. 사실상 광복절 공동 기념 행사는 없을 것임을 시사한 말이다.

이는 남북의 역사적 정통성과 관련이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동 행사 개최를 제안했던 것은 3ㆍ1 운동 100주년에 국한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8ㆍ15 광복은 남남은 물론 남북 간에도 평가가 엇갈리고, 이와 함께 남한 정부의 수립일이라는 점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재개 정도로만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ㆍ1 운동과 임시정부에 두고 있다는 대전제다.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등 독립유공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등 독립유공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반면 북한은 항일 무장봉기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뿐 3ㆍ1 운동을 ‘실패한 부르주아 봉기’ 정도로 평가한다. 임시정부는 아예 사대주의로 몰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서문에는 “김일성 동지께서는(…) 항일 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고 돼 있다. 광복을 김일성의 무장투쟁 결과로 선전하고 있다. 임시정부의 역할과 연합군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 등의 내용은 없다.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투쟁' 증거로 내세운 사진(오른쪽). 최현(최용해 노동당 비서의 부친)이 중앙에 자리에 있는 원본 사진.[중앙포토]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투쟁' 증거로 내세운 사진(오른쪽). 최현(최용해 노동당 비서의 부친)이 중앙에 자리에 있는 원본 사진.[중앙포토]

8ㆍ15에 대한 남북의 평가도 상당히 다르다.
지난 3일 출범한 기념사업 추진위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한완상 전 통일ㆍ교육 부총리는 “8ㆍ15가 진정한 해방이었다면 (남북이 함께) 기려야 하지만, 식민 상태에서 곧장 분단의 상태로 이어졌고 결국 동족상잔의 길로 가고 말았다”며 8ㆍ15 공동행사 개최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기념사업 추진위 관계자는 8ㆍ15 공동행사가 마련되지 않은 데 대해 “8ㆍ15는 남한 정부가 수립된 날이라서”라고 말했다.
남한 정부가 들어선 날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해 9월 9일 북한에서는 김일성 정부가 들어섰다. 이를 근거로 보수 진영에서는 올해 광복절을 ‘건국 70주년’으로 규정한다. 이 관계자는 “8ㆍ15를 민족 공동의 기념일로 보려면 남한 정부 수립일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서 판문점 선언에도 8ㆍ15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평양 시민들이 김일성이 있는 연단을 향해 붉은 색의 깃발, 풍선등을 흔들고 있다.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평양 시민들이 김일성이 있는 연단을 향해 붉은 색의 깃발, 풍선등을 흔들고 있다.

북한은 9ㆍ9절을 사실상의 건국절로 규정해 대대적인 열병식을 비롯해 각종 도발을 반복해왔다. 올해는 북한 입장에서도 건국 70주년이 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3일 출범식에서 아예 '건국'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8ㆍ15와 건국 등에 대한 논란을 비껴간 만큼 북한도 당연히 올해 9ㆍ9절 행사를 작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열병식 등을 하더라도 기존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기념식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5일 통일 농구 취재를 위해 평양에 들어간 한국 기자들은 “평양 시내가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ㆍ9절)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는 70주년이 되는 해라 매일 저녁 시간이 되면 많은 수의 주민들이 김일성광장에 동원돼 집체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5일 오전 평양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일 오전 평양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간에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역사라는 교집합부터 최대한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내년 3월 공동 행사가 진행될 경우 문 대통령이 재차 건국에 대해 규정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 내 갈등은 물론이고, 그 동안 3ㆍ1 운동에 대한 평가를 낮게 해왔던 북한 정권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겠지만 서로 이견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ㆍ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ㆍ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기념사업 추진위 출범식에서 북한에 3ㆍ1 운동 100주년 공동 사업을 제안한 사실을 언급하며 “남북 분단과 적대는 독립운동의 역사도 갈라놓았다. 남과 북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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