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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기 전 딱 3분 멈추고, "잘했어" 앞세우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26)

전동칫솔로 이를 닦는 3분, 처음에는 꽤나 길게 느껴졌는데 그 시간동안 머리속에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가 된다. [사진 smartimages]

전동칫솔로 이를 닦는 3분, 처음에는 꽤나 길게 느껴졌는데 그 시간동안 머리속에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가 된다. [사진 smartimages]

얼마 전부터 전동칫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동칫솔을 사용하며 새삼스레 3분의 시간이 꽤나 길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이를 닦을 때는 3분'이란 공식을 어릴 때부터 머리에 담고 있지만 이 시간을 채워 이를 닦기가 쉽지 않죠. 전동칫솔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래도 그 시간만큼 더 공들여 이를 닦게 됩니다.

처음에는 3분이 꽤나 길게 느껴지는 걸 보며 그간 참 빨리빨리 급하게도 이를 닦았나보다 싶더군요.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만 여전히 급한 상황에선 끝까지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멈춤을 눌러버립니다. 겨우 1분 정도 차이가 날 뿐인데 순간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지는 까닭이겠지요. 어느 날 이를 닦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멍 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닦는, 이 짧고도 긴 시간이 때때로 필요한 때가 있지 않을까?

남편에게 욱하고 좋지 않은 감정이 올라올 때 나도 모르게 표정과 말투가 평소 같지 않지요. 순간순간 생기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먼저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입으론 바로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얼굴색이 금방 붉어질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런 순간 화장실로 들어가 전동칫솔을 켰습니다. 이를 닦으며 가만 생각해봅니다. 겨우 3분 지났을 뿐인데 꽤 정리가 됩니다. 그렇게 화낼 것도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으로 칫솔을 내려놓습니다. 그 잠깐을 참아낼 수 있으면 대화도 날 것 그대로 나가진 않을 텐데 그게 참 어렵다 생각하면서 말이죠.

대화는 정서적 스킨십, 기술과 배려 필요

대화는 정서적 스킨십이기 때문에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사진 Freepik]

대화는 정서적 스킨십이기 때문에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사진 Freepik]

대화는 정서적 스킨십입니다. 내 감정대로 막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잠깐 멈춤'하고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면 따지고 들기 전에 일단은 "잘했어~" 라고 말해주는 것이 부부 사이 대화의 기술은 아닐까 합니다.

가수 하춘화 씨의 ‘잘했군 잘했어’라는 노래는 많이들 듣고 불러 알고 계실 겁니다. 경쾌한 멜로디에 재미있는 가사라 흥겹게 부르긴 했지만 가사를 끝까지 곱씹어 읽어 본 적은 없던 노래입니다. 어느 날 가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그래 이거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영감 / 왜~ 불러 / 뒷~ 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 어쨌소 / 이~몸이 늙~어서 몸보신 할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 왜 그래요 / 외~양간 매어 놓은 얼룩이 한 마리 보았~나~
보았죠 / 어쨌소 / 친~정집 오~라비 장가들 밑천 해주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영감 / 왜~불러 / 사~랑채 비워주고 십만 원 전세를 받았~소~
받았지 / 어쨌소 / 서~양춤 출~려고 쌍나팔 전축을 사왔~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 왜 그래요 / 딱~정댁 마나님이 술값의 독촉을 왔었~나~
왔었죠 / 어쨌소 / 술~병을 고칠 지리산 약 캐러 갔다 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크지도 않은 병아리를 남편이 잡아먹었어도, 의논도 없이 소를 팔아 친정집에 갖다 주었다고 해도, 세를 받아 비싼 전축을 사 왔대도, 술값이 밀린 남편에게도 화를 내기는커녕 일단 “잘했다" 합니다. 따지고 들기 전에 잘했다 하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람이죠. 잘잘못은 상대방이 따지고 들지 않아도 내가 먼저 느끼는 법이니까요.

잔소리 아닌 관심 주고받는 부부가 되기 위한 노력을

에세이집 『언어의 온도』(왼쪽)를 쓴 이기주 작가(오른쪽). [중앙포토]

에세이집 『언어의 온도』(왼쪽)를 쓴 이기주 작가(오른쪽). [중앙포토]

노래 가사를 적어 내려가다 보니 더불어 생각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중 기억에 남아 있던 내용입니다.

빈자리라곤 볼 수 없는 퇴근길 지하철 경로석에 앉은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할머니 옆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법 시끄러웠다. 게다가 어르신은 뉴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어허” “이런” 등의 추임새를 꽤나 격렬하게 넣었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앵커 멘트와 어르신의 목소리가 객차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손등에 손을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보, 사람들 많으니까 이어폰 끼고 보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 아, 맞다. 알았어요. 당신 말 들을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더니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귀에 꽂았다. 일련의 동작이 마지못해 하는 행동은 아닌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당신 말 들을게요.”라는 어르신의 한마디가 내 귀에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오”하는 문장으로 들렸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내가 깜빡한 걸 일깨워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늘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잔소리가 아닌 관심으로 전달되는 부부이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노래를 듣고, 책을 읽으며 한 번 더 생각해봅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voivod70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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