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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틀었을 뿐인데 … 더 세진 히든싱어·꽃할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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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년 만에 돌아온 ‘히든싱어 5’는 지난 1일 싸이와 전현무의 대결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 각 방송사]

3년 만에 돌아온 ‘히든싱어 5’는 지난 1일 싸이와 전현무의 대결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 각 방송사]

시즌제 예능의 적정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히든싱어 5’와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화력이 무섭다. 두 프로그램 모두 3년 만에 다시 찾아왔지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면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히든싱어 5’는 싸이 편이 7.9%(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시즌 3 이선희 편(7.2%)을 넘어섰고, ‘꽃보다 할배’ 역시 9.2%로 이전 시리즈의 그리스 편(9.5%)을 바짝 뒤쫓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 결과 두 프로그램이 비드라마 부문 4, 5위를 차지할 정도다. 통상 예능 프로그램의 시즌 간격이 1년 안팎인 걸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매년 트렌드가 급변하는 방송가에서 지나간 카드를 다시 집어 드는 것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속도 내는 예능프로 ‘시즌제’ #3년 만의 컴백에도 최고 시청률 #게임 요소 풍부해진 ‘히든싱어 5’ #막내 김용건 합류한 ‘꽃보다 할배’ #잘 다듬은 기획력의 승리 보여줘

원조 가수가 모창 능력자들과 대결하는 콘셉트인 ‘히든싱어’는 2012년 시작해 2015년 4번째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후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SBS ‘판타스틱 듀오’, MBC ‘듀엣가요제’ 등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 노래하는 프로그램 붐이 일어났다. 태국·베트남·중국·이탈리아에 포맷을 판매해 현지에서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50여명의 가수가 출연한 상황에서 가수 섭외는 물론 모창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히든싱어’ ‘팬텀싱어’ 등을 기획한 조승욱 CP는 “시즌4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언제라도 라인업을 꾸리면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사이 오래 공들여온 강타·전인권·싸이 등 역대급 라인업이 완성됐고, 경연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출연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 1일 방송된 싸이편은 최종 라운드에서 역대 최고 점수(98표)와 최고 시청률을 동시에 잡았다. 랩 모창이 노래 모창보다 어려운 탓에 대다수가 누가 싸이인지 맞췄을 만큼 난이도 조절에는 실패했지만, 예상 점수를 두고 MC 전현무가 치킨 내기 대결을 하면서 몰입도를 높인 덕분이다. 전현무는 “싸이가 90표 이상 받으면 방청객에게 치킨을 쏘겠다”고 선언했다가 실제로 싸이가 98표를 받으면서 치킨 400인분(100마리)을 선물했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동유럽 편이라는 타이틀 대신 컴백을 강조하는 의미로 ‘리턴즈’를 넣었다. [사진 각 방송사]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동유럽 편이라는 타이틀 대신 컴백을 강조하는 의미로 ‘리턴즈’를 넣었다. [사진 각 방송사]

반면 2013년 시작한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할배들의 스케줄과 건강 상태가 관건이었다. 이순재(83)·신구(82)·박근형(78)·백일섭(74) 등 출연진이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데다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특성상 건강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유럽(프랑스·스위스) & 대만 편, 스페인 편(2014), 그리스 편(2015) 등 ‘할배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들을 따라나선 중장년 관광객들이 쏟아진 것이다. 중장년 시청 층이 꾸준하게 유입되는 덕에 방송국 입장에선 더더욱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나영석 PD는 “선생님들 연세가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생각을 하기 쉽지 않았는데 가장 연장자인 이순재 선생님이 ‘한 번 안가? 또 가야지’ 하신 말씀이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독일·체코·오스트리아 등 동유럽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 담론이 생겨서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1회 방송에서 이서진은 베를린 장벽과 프리드리히슈타트 검문소(체크포인트 찰리) 관광에 열의를 보였다.

두 프로그램은 최대한 기존 포맷을 유지하되 딱 하나만 바꾸는 원포인트 체인지를 시도했다. ‘히든싱어’의 경우 시즌 1~4의 연출을 맡은 조승욱 CP가 물러나고 ‘비정상회담’ ‘잡스’ 등을 연출한 김희정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매회 특집처럼 꾸미고 싶다”는 김 PD의 포부처럼 ‘히든싱어’는 싸이와 전현무의 치킨 내기 대결, 강타 여장 공약 등으로 화제 몰이를 하고 있다. ‘꽃보다 할배’의 히든카드는 새로운 막내 김용건(72)의 합류다. KBS 공채 탤런트 선후배 사이로 20대 시절부터 박근형과 어울려 다니고 백일섭과 함께 하숙했던 그는 ‘젊은 피’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기수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에서 시리즈물과 시즌제가 보편화하면서 포맷의 수명 자체가 예전보다 길어졌다”며 “마블 시리즈처럼 후광효과가 존재하는 한 그것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히든싱어’는 누가 원조 가수인지 맞추면서 시청자의 참여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꽃보다 할배’ 역시 나이 든 출연진의 배낭여행에 대한 도전과 좌충우돌 여행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재미와 용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런 점에서 고령화 사회에서 얼마든지 유효한 포맷”이라고 설명했다.

‘숲속의 작은집’에 출연해 자급자족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체험하고 있는 배우 소지섭. [사진 tvN]

‘숲속의 작은집’에 출연해 자급자족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체험하고 있는 배우 소지섭. [사진 tvN]

스타 PD들의 자기복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실제 ‘삼시세끼’(2014) ‘신서유기’(2015) 등 여행 예능을 정착시키고, 지난해 ‘윤식당’ ‘알쓸신잡’ ‘신혼일기’ 등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나영석 사단은 지난달 ‘숲속의 작은집’이 1%대로 종영하자 다시 첫 번째 카드를 꺼내 든 모양새가 됐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숲속의 작은집’의 경우 기존 프로그램의 속성을 지나치게 잘게 쪼개면서 소구할 수 있는 시청 층이 너무 좁아졌다. ‘꽃보다’로 회귀는 그 반경을 다시 넓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새로운 시도는 유의미하지만 킬러 콘텐트의 부재로 1~2달 만에 다음 시즌으로 되돌아오는 회전문식 편성은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그 시대 상황에 맞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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