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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기업인 대화’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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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근평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근평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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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6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인사 대화’(기업인 대화)를 앞두고 “두 나라 정부도 인정하는 대화 채널을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직접 나선 만큼 그동안의 대화 채널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었다.

박 회장은 행사가 끝난 뒤에는 “모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얘기를 들은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중국 인사들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동참을 호소하며 자유무역주의의 강화를 약속했고, 우리 기업인들은 전기차 배터리 규제 등 통상 한한령(限韓令)부터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박 회장의 의도대로 한국 측 재계 인사들은 중국 최고위층과 민감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이번 ‘기업인 대화’는 대(對) 중국 통상 분야에서 최고 실리 채널이 될 가능성을 보였다. 한·중 통상 관계에 먹구름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민과 관의 고위급 인사들이 만나 서로의 요구를 교환한 까닭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논의한 점도 이번 대화의 성과다. 두 나라의 민간 기업끼리 연합해 정부에 대응하자는 아이디어도 정치 상황에 경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같이한 덕분이다.

중국 가전업체 TCL그룹 리둥성(李東生) 회장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아 삼성전자 등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한국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조금 더 합법적인 자세와 안정적인 정책으로 임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중국이 여전히 정부 주도의 사회란 것을 고려하면 꽤 수위가 높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박용만 회장은 “두 나라 민간의 뜻을 정부에 전하기도 좋고, 정부의 의사를 민간에 반영하기에도 이번 기업인 대화가 제격”이라고 평가했다.

과제는 대화의 지속성이다. 최태원 회장이 “단기와 장기로 나눠 양국 공동 연구팀을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회장은 “단기팀은 협력요소연구팀과 갈등요소연구팀으로 나누고, 장기팀의 첫 번째 연구 과제로는 한·중 경제협력산업단지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과 중국은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번 ‘기업인 대화’가 그동안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근평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