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의주 구상’ … 중국엔 경제 지원, 미국엔 제재 해제 요청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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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섬유와 종이를 생산하는 신의주 화학섬유 공장을 시찰하며 공장 간부들을 엄하게 질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하반기 첫 공개활동 지역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댄 평안북도 신의주·신도를 찾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폼페이오 대면 앞두고 경제 행보 #북·중합작 추진했던 황금평도 들러 #미 협조 안 하면 중국과 경협 의지

김 위원장의 방문 시점이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후속 협상을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조율하던 때여서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번 ‘신의주 구상’을 통해 하반기엔 경제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미·중 모두에 동시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엔 경제 지원을, 미국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일제히 김 위원장이 신의주·신도를 방문해 현지 화장품·화학섬유 공장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3일자는 이런 경제 행보를 특히 강조했다. 1면 사설에서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앞두고 경제 발전을 위해 ‘총공격전’을 벌이자고 독려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새해는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한에서는 (평창) 겨울철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것으로 북과 남에 모두 의미 있는 해”라고 밝혔었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차량으로 최소 약 3시간(구글맵 기준)이 걸린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김 위원장은 소형 모터보트를 타거나 바위섬을 걸어 올라가는 ‘고행’의 모습까지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과의 대면을 앞둔 김 위원장이 신의주 등을 찾은 이유는 그의 동선과 워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찾아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중략) 설비 현대화에 앞서 생산환경부터 일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과거 김 위원장이 공사 현장을 찾아 공개 질타를 한 뒤엔 해당 지역에 인력과 자원 투입이 집중됐다. 평양 여명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동선에 2002년 북·중 합작으로 추진했던 황금평 경제특구 등이 포함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당시 북한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서울에 경제시찰단으로 보냈고, 남측은 ‘점→선→면’ 개방 전략을 전달했었다. 평양에서 먼 북·중 접경 지역을 우선 개발하고, 이 점들을 선으로 연결한 뒤, 전국적으로 키우는 발전 방안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신의주 지역을 북·중 교역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라며 “동시에 섬유·화장품 등 경공업 공장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면서 민생을 위한 경제 발전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문이 김정은식 개혁·개방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미국 측엔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설사 미국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중국과 경협을 하면 된다는 북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