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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폼페이오 보란듯 보트 타고 바위섬 등반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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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하반기 첫 공개활동 지역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댄 평안북도 신의주ㆍ신도를 찾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폼페이오 방북 앞두고 보란듯 미ㆍ중에 메시지

김 위원장의 방문 시점이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후속 협상을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조율하던 때여서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번 ‘신의주 구상’을 통해 하반기엔 경제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미ㆍ중 모두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엔 경제 지원을, 미국엔 대북 제재 해제 요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신도군(비단섬)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작은 모터보트에서 내리고 있다. 이날 시찰에는 좌천 된 것으로 알려졌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원 안)이 모습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신도군(비단섬)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작은 모터보트에서 내리고 있다. 이날 시찰에는 좌천 된 것으로 알려졌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원 안)이 모습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일제히 김 위원장이 신의주ㆍ신도를 방문해 현지 화장품ㆍ화학섬유 공장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비핵화와는 무관한 북ㆍ중 접경지역에서의 경제행보였다.

북ㆍ미 비핵화 담판이 한창인 가운데 김 위원장이 본인의 주요 의제는 경제라고 못박은 셈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일자는 경제 행보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1면 사설은 북한 정권수립일인 9ㆍ9절을 앞두고 경제 발전을 위해 ‘총공격전’을 벌이자고 독려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새해는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한에서는 (평창) 겨울철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것으로 북과 남에 모두 의미 있는 해”라고 밝혔었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차량으로 최소 약 3시간(구글맵 기준)이 걸린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 김 위원장은 소형 모터보트를 타거나 바위섬을 걸어 올라가는 ‘고행’의 모습까지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과의 대면을 앞둔 김 위원장이 일부러 신의주행을 택했을 의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답은 김 위원장의 동선과 워딩에 있다. 그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찾아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중략) 설비 현대화에 앞서 생산환경부터 일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과거 김 위원장이 공사 현장을 찾아 공개 질타를 한 뒤엔 해당 지역에 인력 및 자원 투입이 집중됐다. 평양 여명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신의주ㆍ신도에도 곧 개발 바람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섬유와 종이 등을 생산하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시찰하며 "공장 책임일꾼들이 주인 구실을 똑똑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엄하게 질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공장 내부를 지켜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바지에 흙먼지가 묻어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섬유와 종이 등을 생산하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시찰하며 "공장 책임일꾼들이 주인 구실을 똑똑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엄하게 질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공장 내부를 지켜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바지에 흙먼지가 묻어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이번 김 위원장의 동선에 2002년 북ㆍ중 합작으로 추진했던 황금평 경제특구 등을 포함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당시 북한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서울에 경제시찰단으로 보냈고, 남측은 ‘점→선→면’ 개방 전략을 전달했었다. 평양에서 먼 북ㆍ중 접경 지역을 우선 개발하고, 이 점들을 선으로 연결한 뒤, 전국적 키우는 발전 방안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신의주 지역을 북ㆍ중 교역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라며 “동시에 섬유ㆍ화장품 등 경공업 공장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면서 민생을 위한 경제 발전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문이 김정은식 개혁ㆍ개방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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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가 미국 측엔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빨리 제재를 풀어야 우리가 경제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설사 미국 아니더라도 중국과 경협을 하면 된다는 북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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