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부담 많은 "곡예 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정부가 내놓은 19조3천7백12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농어촌 지원· 서민생활향상 등에 역점을 둬 예산편성이「복지재정」 의 틀을 갖췄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 동안 우리경제의 주요과제가 정치· 사회의 민주화 추세와 함께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 지역간의 불균형 시정이었다면 이러한 예산편성 방향은 상황의 변화에 맞춘 불가피한 재정기능의 전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예산도 재정긴축과는 거리가 먼 확대예산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있다.
겉으로 나타난 숫자만 보면 일반회계 예산증가율이 10·9%로 올해 예산증가율 (12· 2%) 을 밑돌지만 내년에 담배소비세의 지방세 전환으로 정부가 하던 사업을 지방에 넘긴 것 (2천2백27억원) 을 합하면 실제 예산증가율은 l2·2%로 내년경상성장률 11·8%를 웃돌고 있다.
여기에 각종 기금 등에서 돈을 꾸어다 벌이는 재정 투융자 특별회계 증가율이 36·1%나 되고 예년 일반회계에서 지출하던 도로사업마저 도로사업특별회계를 신설, 떠넘긴 점을 감안하면 전체 정부지출은 올해보다 그 규모가 대폭 늘어나게 되어 있다.
실제 정부가 밝힌 내년예산을 부문별로 보면 농어촌 지원 등 각종 투자사업비의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경지정리와 농업기계화 등 농어촌 지원 예산은 8천4백19억원으로 올해 4천5백9억원보다 87·7가 늘었으며 의료보험확대· 생활보호대상자지원 등 국민복지예산도 올해 7천7백51억원에서 내년에는 1조1천2백69억원으로 45·4가 증가했다. 또 주택· 상-하수도 등 생활개선투자도 크게 늘어 이들 세 부문이 전체사업비증액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각종 투자사업비를 확대한 것은 물론 복지수요의 증대라는 국민들의 욕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년이 6공화국으로서는 그 동안 내걸었던 각종공약을 시행하는 첫 해로 가시적인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컸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 각종투자사업을 대폭증가 시킨 결과 그만큼 내년예산은 재정의 경기진작효과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예산당국도 내년 이후의 수출둔화 등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각종 투자사업을 앞당겨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복지증진이나 경기부양 등 모두가 바람직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같은 재정기능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 부담의 가중을 초래한다는 사실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년 예산에서 정부는 국민의 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도 복지지출은 확대해보자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내년의 세입예산을 보면 전매익금의 지방이양, 관세율 인하에 따른 관세수입의 감소, 근로소득세 경감 등 세입을 줄여 조세부담률을 올해의 19·1%에서 내년에는 l8·1%로 낮추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생기는 세수 결함은 그 동안 모아두었단 세계잉여금과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각종 기금으로부터의 차입, 정부보유주식매각 등을 통해 아예 사업자체를 재정투융자 특별회계로 돌려 추진한다는 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또 근로소득세 경감 등으로 생기는 세입 감소분은 법인세· 부가세 등의 증수로 충당, 전체 내국세 증가율을 22·8%로 잡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세계잉여금· 기금 등으로부터의 차입은 일시 방편에 불과하며 이 같은 세수증가 기대는 올 하반기와 내년의 불투명한 경기전망을 감안할 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마치 줄타기 곡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더우기 복지예산은 한번 늘려놓으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을 그 특성으로 하는 만큼 내, 년을 잘 넘긴다 해도 그 후에는 계속 무거운 짐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의 재정은 경직성 경비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방위비만 해도 GNP의 일정률을 할당하는 방식은 지양키로 했다 해도 내년의 규모가 올해에 비해 10·9%가 늘어나 GNP의 5·1%를 자지하고 있고, 공무원 처우개선을 위한 예산도 봉급 인상률은 한자리 숫자인 9·7%에 머물렀지만 체력단련비 등 각종 명목의 복지후생비를 신설한 결과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지출 비중이 16·3%로 늘었다.
이 때문에 세출 예산 중 직성 경경비의 비중이 올해의 68·4%에서 69·4%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또 하나 내년예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확대 재정이 몰고 올 인플레 우려다.
올해 공공요금을 일체 동결해 온데다 높은 임금인상이 내년으로 이어질 경우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또 내년예산 지출 증가 분이 투자도 있지만 상당부분 민생관련 소비지출로 할당되어 여기에 재정마저 돈을 푸는 쪽만으로 작용할 경우 물가에 미치는 파장은 예측키 어렵다. 더우기 이번 예산안이 여 소야 대의 국회 심의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선심공세의 제물이 된다면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장성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