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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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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겸손하게 역사가 ‘나선형 발전’을 이룬다고 했지만, 그것도 틀렸다. 단언컨대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정(正)으로 나아간 딱 그만큼 반(反)으로 후퇴해 합(合)은 결국 제자리인 것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반복될 뿐이다.

인간이 그대론데 역사가 바뀌나 #기억하지 못하면 불행 또 겪는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흔한 착각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진보를 혼동한 탓이다. 과거 도서관에 가도 알기 쉽지 않던 지식이 지금은 손바닥 안 스마트폰에서 다 찾을 수 있으니 스스로 똑똑해졌다고 믿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크로마뇽인 아이를 타임머신에 태워 이 시대로 데려와 교육시키면 노벨상 탈 과학자도 될 수 있다는 게 요즘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지식의 총량이 늘어났을 뿐 인간의 행동은 달라진 게 없다.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으니 역사가 발전할 까닭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공지능이 생활 속을 파고드는 이 시대에 ‘황제’와 ‘차르’ ‘술탄’, 심지어 ‘파라오’까지 이만저만한 시대착오가 아닌 호칭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리 없다. 그것도 무슨 아이돌그룹처럼 동시에 줄 맞춰 군무를 추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시황제’라 부른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임기제한 조항을 삭제해 공고한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장기(영구) 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까닭이다.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골라 잡아가며 4기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5기를 위한 개헌을 생각하고 있다.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 때부터 따져 25년 집권이 보장됐는데 그 이상을 노리니 차르가 맞다. 지난달 집권 2기를 시작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임기제한을 없애는 개헌 추진으로 파라오 등극이 멀지 않았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역시 2033년까지 30년 집권의 길을 열어 술탄으로 합류했다. 장기 독재가 가장 불가능한 나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고무시키는 건 아이러니다. 그의 막무가내 권위주의 탓이다.

누구는 이들의 장기집권이 사실이라 해도 과거처럼 신격화된 권력은 아니라고 말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국민들이 오히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포퓰리즘으로 바꾸면 얼마간은 맞다. 뭘 해도 나아지지 않는 팍팍한 삶에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민주주의보다는 되건, 안 되건 사이다처럼 시원한 일도양단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는 말까지 나온다.

역시 틀린 말이다. 그걸 역사의 발전이라 한다면 다신론이 발전해 일신론이 된 종교가 더욱 발전하면 무신론이 된다는 주장도 맞는 게 된다. 이솝 우화의 한 대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개구리들에게 신이 황새를 보냈더니 다들 만족했는데 결국 다 잡혀먹히고 만다는 얘기 말이다.

역사가 발전하지 않는 건 인간이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탓이다. 결국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이는 권력자와 국민에게 함께 해당하는 말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남용되며, 무엇이든 오래되면 상한다는 진리가 욕심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을 이어가려는, 국민은 권력에 안주하려는 욕심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불행을 겪은 적이 있다. 유효기간 5년짜리 권력도 쉬이 부패하고 남용되는 걸 목격한 지도 얼마 안 됐다. 하지만 또 겪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자꾸만 잊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권력자도 그러하고 국민도 그렇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제 우리도 다시 그런 권위주의의 축(Authoritarian axis)에 끼이게 될까 미리 한번 걱정해 봤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