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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과학화로 경기력 극대화|기적 몰고 온 동독사이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금 우리는 믿기 힘든 기적을 현실로 확인하고 있다. 동독기가 서울하늘을 수놓고 있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우뚝 선 동독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남자1백km단체도로 결승점인 통일로 필리핀 참전비 앞 간이인터뷰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동독선수들에게 2백여 취재기자들의 질문공세가 계속되고있는 가운데 한쪽구석에선 동독의 유력지 다스 볼크(Das Volk)지의 「헬무트·벵겔」기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동독사이클의 기적」을 본사에 타전하고 있었다.
「동독사이클의 기적」-. 그것은 한낱 스치는 바람인가, 아니면 폭풍우를 예고하는 회오리바람인가. 그러나 분명한 건 동독의 도로사이클우승은 결코 우연한 행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메인이벤트에 맞선 예고편이 아닐는지-. 실제로 동독사이클의 강세는 도로경기 뿐 아니라 트랙 각 종목에 걸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서울올림픽 또한 예외일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처럼 세계사이클계의 판도변화를 몰고 온 동독의 잠재력은 무엇일까. 고도의 첨단기자재를 개발, 활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훈련을 실시한 결실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른바 「기술혁명」의 개가인 셈이다.
동독사이클의 기술혁명은 사이클프레임에서부터 헬미트·타이어·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서울올림픽에 첫선을 보인 신형사이클은 에어로 메카닉 (항공역학)을 이용, 공기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끔 특별히 제작된 게 특색. 특히 첨단소재인 티타늄합금으로 처리돼 기존사이클의 프레임보다 훨씬 단단하고 중량 또한 가볍다. 티타늄은 가볍고 단단한 특성 때문에 우주선의 표면 타일제작에 활용되는 신소재로 이를 사이클프레임 제작에 사용하기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디자인 역시 종래의 원형대신 최대직경 12cm의 유선형으로 설계하고 안장높이를 낮춤으로써 공기저항을 덜 받도록 고안돼있다.
또 이 신형사이클은 앞뒤타이어의 크기를 종전 27인치에서 차등배치(24∼27인치)함으로써 타이어의 회전력을 높여 가속에 의한 추진력을 강화한 것도 특징중의 하나다.
이 같은 기자재의 과학화로 공기저항을 줄여 기록단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에른스트·루딩」코치의 실명이다. 이는 18일 벌어진 남자단체 도로경기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실제 테스트결과 4km개인 추발의 경우 0.5초, 1백km 도로 레이스의 경우 15초 가량의 기록 단축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 이 신형 사이클은 도로 뿐 아니라 4km 개인 및 단체경기 출전 선수들이 주로 활용한다.
이밖에도 동독은 바람막이를 부착한 에어로 다이내믹 헬미트를 사용, 효과적인 레이스 운영을 꾀하고 있는가하면 접지 저항을 최소화하는 경량타이어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훈련내용의 과학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무산소 훈련이 바로 그것. 심폐기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이 훈련은 지구력 훈련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도로단체경기에서 우승한 동독선수들이 초반부터 전력질주, 줄곧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이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안플러·우베」(24)는 기자회견에서 털어놨다. 특히 레이스에 앞서 동독선수들은 한결같이 코를 솜으로 틀어막고 스타트해 눈길을 끌었는데 출발한 후 일정한 가속이 붙을 때까지는 무산소 호흡을 해야 중반이후 떨어지는 체력감소를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무산소 훈련은 주로 체력소모가 많은 마라토너나 조정·카누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왔으나 사이클선수들에게 적용, 실시되기는 동독이 처음이다.
다른 종목 훈련을 고루 병행시키는 연계훈련도 동독스포츠의 또 다른 특색이다.
도로 단체에서 우승한 「우베」는 2년간 수영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각별한 수영훈련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망주의 조기 발굴, 이에 따른 체계적인 육성은 동독사이클을 이끄는 숨은 원동력이다. 이 같은 조기발굴, 육성은 비단 사이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단체도로우승의 주역 「마리오·쿠모」는 대표적인 케이스.
올해나이 26세의 「쿠모」는 사이클경력 15년째의 베테랑. 건축학도 이기도한 「쿠모」는 지난 80년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 첫 국가대표로 출전, 3천m 개인 및 4천m 단체 추발에서 각각 2위를 마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81년 도로선수로 전향했으며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오스트리아)에선 개인도로 5위·단체도로 6위에 올라 가능성을 보였다.
또 남자스프린트의 금메달 후보인「헤술리히·루츠」(29) 역시 조기발굴, 육성한 결과 결실을 맺은 독보적인 사이클스타. 대표선수 경력만도 13년째로 76년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스프린트) 이후 줄곧 세계무대를 석권해 오고 있다. 세계대회 우승만도 줄잡아 70여회. 서울올림픽에선 맞수로 팀 후배 「휘브너·미하엘」와 LA올림픽 우승자인 미국의 「마크·고르스키」를 꼽을 정도. 그러나 「루츠」의 우승을 점치는 이가 많다.
이밖에 남자 1km독주 세계기록보유자인 「마이크·말초프」(26), 남자 50km선두경기에 출전하는 「올라프·루드빅」(28), 그리고 빙상스프린터에서 사이클선수로 변신, 여자스프린트에 출전하는 「크리스타·루딩」(29)도 한결같이 이에 해당하는 사이클 기대주들이다. 특히 캘거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여자 1천m)인 「루딩」은 동·하계올림픽석권의 부푼 꿈 아래 여자스프린트우승을 잔뜩 벼르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지상주의를 고창하는 동독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뒷바라지는 동독사이클 진홍의 버팀목이다.
동독체육협회(DTSB)는 동독체육의 총본산. 스포츠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스포츠를 고양하는 게 DTSB의 최대목표.
때문에 동독인들은 스포츠정책을 국가의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소화, 여가생활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었다. 이러한 터전이 오늘날 동독 스포츠를 세계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게 한 밑거름이 됐다.
현재 동독에는 1만4천여개의 스포츠클럽이 있으며 이 안에서 활약중인 지도자수가 38만명, 스포츠회원수가 무려 2백60만명에 이른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매년 10억 달러(한화 7천억원)를 투입하고 있으며 서울올림픽에 대비한 선수훈련에만 족히 5억 달러나 투입됐다고.
결국 동독사이클의 기적은 이 같은 토양 위에 비로소 꽃피운 결실이며 결코 우연한 행운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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