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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D보다 북한이 무엇을 언제 양보할지가 중요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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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호 25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보름 넘게 지났지만 북한 비핵화를 위한 추가협상이나 구체적 조치 속도가 나질 않고 있다. 오히려 한미 연합훈련의 잇단 취소와 주한미군 감축 등 한·미 동맹의 변화와 관련한 논의가 더욱 무성하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한반도 석학 두 명을 제주컨벤션센터에서 만나 북·미 정상회담 평가부터 한·미 동맹의 현주소까지 핵심 쟁점을 들어봤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SCD) 석좌교수와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 26~28일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스테판 교수와 강 교수는 북·미 회담이 좋은 시작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으나 북핵 검증, 정책 목표로서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북제재의 효용성과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데이비드 강 교수 #핵과학자들 해외로 보내더라도 #북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어 #한·미 연합훈련 일시적 취소로 #양국 동맹관계 흔들리지 않아 #스테판 해거드 교수 #북 핵시설·핵물질 신고부터 시작 #정치적 합의땐 2년 내 비핵화 가능 #미국 노력 없으면 행동 안 취할 것 #문 대통령·한국민 인내심 가져야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의 성과는 무엇인가.
스테판 해거드 교수=공동선언문은 몹시 부실했다. 선언문의 순서를 보면 비핵화가 세 번째인데 이는 북한이 의제 싸움에서 이겼다는 증거다.

데이비드 강 교수=긍정적인 진전이었다. 압박으로는 진전을 이룰 수 없다. 북한을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접근법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북한이 한 번의 회담으로 몇 주 이내에 비핵화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6개월 전 우리는 전쟁을 우려했다. 그 당시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선언하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북한이 다른 길을 택하는 중요한 시작이다.

이란과 달리 북한 핵물질은 위치 몰라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미국 국내 정치적 상황이 양국 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해거드=트럼프는 회담 자체가 열리기를 바랐다. 트럼프의 외교 행보는 국제 합의에 참여하지 않거나 떠나는 식이었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기후변화협약, 유엔 인권이사회를 탈퇴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외교적인 승리다.

=없다고 본다. 트럼프는 이전의 대통령과 다르다. 그는 보좌진 혹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트럼프는 이란핵협정(JCPOA)이 충분치 않다며 파기한 바 있다. 싱가포르 회담이 이를 능가하는 수준의 북·미 핵협정 타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는가.
해거드=대다수의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북한과 JCPOA 수준의 합의를 본다면 만족해할 것이다. 미신고 핵시설, 핵물질의 신고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란과 달리 북한의 경우 핵분열성물질, 핵무기 재고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북한과 6~18개월 내에 합의를 이루겠다는 목표는 쉽지 않을 것이다.

=JCPOA는 북한에 해당하는 적절한 모델이 아니다. 북한과의 합의는 JCPOA보다 고위급 합의가 될 것이며 모호할 것이다. 500페이지짜리 법률적 합의가 아니다. 북한이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비핵화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알맞다는 판단을 할 때 합의가 이뤄질 것이다.

양국 공동선언문에서 CVID라는 단어가 빠진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거드=북한이 의제를 선점했다는 점 이외에는 중요하지 않다. CVID라는 단어가 공동합의문에서 빠졌다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 목표가 CVID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략이 무엇인가다. 무엇을 언제 양보할 것인가의 순서가 중요하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CVID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북한이 검사관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더라도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핵과학자들을 해외로 보내더라도 북한은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현재 수준에서 과거로 돌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한번 포괄적 합의로 해결 생각은 순진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

과학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몇 년 걸릴 것이라고 보는가.
해거드=양국 간 정치적 합의를 가정한다면 기술적으로 CVID는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의 지적처럼 15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18개월에서 2년 내에 가능할 것이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면 1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불가역적인 노력 없이 우선적으로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은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계산법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되돌릴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의 비핵화를 완전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해거드=북한의 역량과 시설 관련 신고가 없었다. 검증 절차는 쉽다. 경험과 기술이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사관들의 영변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영변 이외에 두 번째 원심분리기 시설 위치를 알지 못한다. 핵분열성물질과 핵무기의 재고도 문제다. 북한의 제조 능력 또한 과소평과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얼마나 빠르게 자신들의 역량을 신고할 것인가에 달렸다.

=검증은 쉽다. IAEA 검사관들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포괄적인 합의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몹시 순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한미 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는가. 주한미군 감축도 향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보는가.
해거드=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와 상당한 수준에서 합의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중국식 쌍중단 모델을 따랐다. 이후 어떤 단계를 거치느냐가 핵심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선 백악관 내 주류가 아니다.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동맹이라는 시스템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양보한 것이다. 연합훈련은 과거에도 중단한 바 있으며 지금도 중단할 수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 혹은 한·미 동맹이 취약해 한 번의 연합훈련 취소에 근간이 흔들린다고 보는 시각은 맞지 않다. 각각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외교다. 주한미군도 협상될 수 있다. 규모가 2만4000명 이하로 내려간다고 해서 군사준비태세가 되돌릴 수 없이 손상되지 않는다.

미국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효용성을 평가해달라.
해거드=주한미군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주둔한다는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애초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주둔했다. 북한의 핵·재래식 전력이 상당 수준 감소한다면 주한미군 감축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한국과의 협의 없이 북·미 간 논의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억지한다는 실질적인 이유로 배치되었으나 지금은 상징적이다. 미국이 유사시 참전할 것이라는 상징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회담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의제는 무엇인가.
해거드=시간표, 구체적 행동, 기술적 세부사항 등 모든 것을 논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외교에서 위험과 실익은 무엇인가.
해거드=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김정은과 대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평창올림픽, 남북 간 대화 없이는 북·미 간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방문 일정 무산과 관련해서 중국이 어떠한 역할을 했으리라고 본다.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 참석한다면 중국이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미국보다 더 정교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트럼프는 북한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반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경우 이는 국가생존의 문제다.

주한미군 감축해도 군사태세 손상 안돼

문 대통령이 향후 북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해거드=문 대통령은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한국민들이 보다 빠른 남북 관계 개선을 원하고 김정은이 이를 이용한다면 (그는 이에 매우 강하다) 워싱턴과 서울이 속도 조절에 이견을 보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도전은 기대감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미 관계에 달려있다. 한국이 휴전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정치적인 해결책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양자 간 합의를 통해 종전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선언한다면 주변국들이 이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최대한의 압박 캠페인은 비공식적으로 끝난 셈이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은 모두 북한과 무역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중국과 대북제재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해거드=미·중 간 무역 분쟁은 북핵 협상과 별개로 간주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를 구하면서 동시에 무역 분쟁을 벌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시진핑에게 조언한다면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도 불구하고 왜 대북 제재에 협력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대북 제재가 김정은의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본다. 대북 제재가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줬다는 증거가 없다. 북한이 중국의 대북 제재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토했을 것이다.

제주=김동현 월간중앙 통신원, 사진=김경록 기자 Donghyeon.Kim@tuft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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