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세계 1위 독일을 무너뜨린 손흥민(26·토트넘)의 속마음은 이랬다.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은 28일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추가시간 쐐기골을 터트려 2-0 승리를 이끌었다. 주세종(아산)이 후방에서 길게 패스를 찔러줬고, 손흥민은 전력질주해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이 나와 텅빈 골문을 향해 밀어넣었다.
손흥민은 이날 부상으로 결장한 기성용(스완지시티)을 대신해 주장완장을 찼다. 최전방에서 외로운 사투를 펼치면서도 임시 주장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비록 한국은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손흥민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의 인상적인 인터뷰를 각색해 각오를 전했다. 손흥민의 사진엔 '내가 웃게해준다고 했지'란 글귀가 적혀있었다. 손흥민은 대회를 앞두고 "러시아에서는 국민들이 절보고 웃을 수 있는 결과를 낸다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는 막내로 참가했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눈물을 펑펑 쏟아 '울보'란 별명을 얻었다.
한층 성장한 손흥민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웃게 만들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스웨덴과 1차전에서는 사실상 왼쪽윙백으로 나서 공격본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축구 전설 박지성(37)은 "흥민이를 보면 안쓰럽다. 골을 넣어야할 기대치가 높아 부담감이 나보다 더할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멕시코와 2차전에서 1-2 패배를 막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 만회골을 터트린 뒤 골 세리머니도 생략했다. 경기 후 “국민들께 죄송하다”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손흥민은 세계 1위 독일과 3차전을 앞두고는 "1% 가능성, 1% 희망을 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독일전에서 쐐기골을 터트린 뒤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하지만 경기 후 16강 진출이 좌절된 뒤에는 신태용 감독과 기성용(스완지시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다. 손흥민은 러시아에서 우리 국민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손흥민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선수들이 공감했다. 모든걸 쏟자는 마음이 강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독일전 눈물의 의미에 대해 "동료들이 월드컵 부담감을 나눠줘서 고마웠다. 내 역할을 못해 선수들에게 미안했다. 응원해주신 국민들을 향한 감사의 표시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독일 국민들도 울렸다. 2008년 동북고를 중퇴하고 독일프로축구 함부르크에 입단한 손흥민은 2015년까지 독일에서 49골을 터트렸다. 자신을 키워준 독일에 비수를 꽂았다. 손흥민은 "월드컵에서 독일을 만나는게 인생의 꿈이었다. 독일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독일을 이기는게 꿈이었다. 나 혼자 한게 아니라 동료들이 함께 이뤄낸 것"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박지성(37)~기성용에 이어 한국축구대표팀 캡틴 계보를 이어갈 선수다. 손흥민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할 수 있다'. 오늘 보셨듯 팀적으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월드컵은 항상 두려운 무대다.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4년 뒤, 8년 뒤 발전하는게 필요하다. 앞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캡틴 손' 손흥민은 대한민국 차기 주장다웠다.
카잔(러시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