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금메달 받은 서울시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올림픽 개최에 최대의 변수였던「교통문제」가 승용차 홀·짝 운행에 성공함으로써 한시름 놓게됐다.
우리국민의 민주역량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 여간 흐뭇하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정신은 훌륭했다」, 「서울시민의 승리, 올림픽 금메달 감」이라는 신문지면의 큼직한 활자와 찬사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말 그대로 신선하고 값진 것이었다.
훌·짝 실시 첫날 짝수차량의 90%이상이 호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협조차량이 더욱 늘어났다.
이날 하오와 이튿날 아침에는「운행증」을 부착한 차량을 제외하고는 비협조 차량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현장계도에 국민학교 어린이에서부터 자원봉사 대학생파 녹색 어머니, 모범운전사 등 무려 6만명이 발벗고 나섰고, 길거리 시민과 버스승객, 운전자들도 비협조 운전자들에게 따가운 몸종과 손가락질을 했고 창피와 무안을 주었다.
시민들의 이같은 협조와 호응에 힘입어 도심 교통량이 평소보다 30%가량 줄고 평균시속이 50∼60㎞로 빨라졌다.
최악의 교통체증 지역인 반포대교∼남산 3호터널구간 마저 주행속도가 60㎞나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서울의 교통상태가 얼마나 완화되고 개선 되었다는 것보다 우리국민의 수준이 얼마나 높고 성숙하고 민주화되었으며 「강제」에 의한 힘보다 「자발」에 의한 국민스스로의 힘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된것도 아니고 경찰과 법을 동원한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누가 댓가를 주거나 그걸 바라서 한것도 아니다.
만약 이번 홀·짝 운행에 관이 나서고 경찰이 단속을 폈더라면 이만한 성과는커녕 오히려 반발하거나 피해서 다니고 특수차량은 특권을 자랑이나하듯 으스대며 설치고 다녔을 것이다.
지난번 LA올림픽 때 전차량의 96%가 자가용 승용차인데도 이용자가 30%에 불과했고 걸어서 경기장을 찾은 시민이 2O%나 됐다고 우리가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극성스럽다할 정도의 호응도를 보면 LA를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 스스로 자조하고 비하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
민주적 시민의식이 어느정도인가는 작년의 6월 항쟁에서도 나타났었지만 우리의 시민정신과 선진화된 의식수준은 이번에도 여실히 입증된 셈이다.
물론 훌·짝 운행이나 한두번의 쾌거로 우리국민이 선진국의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서둘러 단정을 내리는건 이르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과 잠재력만은 익히 읽을 수 있지 않았는가. 앞으로 이러한 행사가 거듭되고 상호협조하고 솔선수범하는 무드가 차곡차곡 쌓이고 축적되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수준으로 다 다를수 있다는 자신과 긍지를 갖게 됐다.
문제는 정치와 권력의 민주화만 잘 진척되고 물꼬를 잘트기만 하면 모든게 잘 풀리게 되어었다.
이번 훌·짝 운행에도 비협조자가 고급 승용차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분탕질을 하고 국민을 실망시키고 분노케한 사람들은 권력 아니면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법을 깔아뭉개고 부정과 부패로 사회를 더럽히고 타락하게 만들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모처럼 발현된 질서 의식과 시민 정신을 발전, 승화시키기 위해 사회지도급 인사들은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이번을 교훈삼아 정부도 관주도는 되도록 피해야 할 것이고 어디까지나 자발과 자율을 유도하고 국민의 자치능력을 기르는데 힘써야 한다.
밑에서부터의 운동과 기운을 북돋우고 독려하는 「교통정리」만 필요할 뿐이라는걸 재삼 강조해 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