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초강경 담화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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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도 권리 주장은 한국 독립 부정하는 것"

"정상회담 왜 거부하나…한·중 후회할 때 올 것"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가원수로는 이례적인 초강수의 외교적 대응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해 공개적이고 당당하게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에서 발표된 '한.일 관계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문'을 통해서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용한 대일 외교'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담화의 첫머리를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시작한 것도 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독도 문제를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전면적 외교전도 불사하겠다는 예고다.

노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으로 한.일 간 대치와 갈등은 장기 국면으로 이어지게 됐다. 일본과의 교류 규모로 볼 때 부담이 가는 대목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22일 한.일 차관급 회담의 결과가 불리했다는 여론을 의식해 노 대통령이 초강경으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청와대는 부인했다. 한 참모는 "차관급 협상에서 이뤄 낼 수준은 그 정도뿐"이라며 "대통령은 외교협상과 무관하게 21일 담화를 발표하려 했으나 일본 차관의 방한에 따라 연기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담화는 "주권 훼손에 관한 문제"라는 주된 명분과 함께 여러 측면을 고려한 전술적 접근으로 분석된다. 우선 '침략 범죄의 역사'를 정당화한 일본 정부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겠다는 의도가 감지된다. 일본의 의도에 따른 국제무대에서의 각종 분쟁화에 대비한 포석일 수 있다. 이미 외교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도 일본의 태도가 '한.미.일 동맹'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외교관 소환,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의 독도 기점안 제출 등의 개별 협상 카드는 일본 측의 저항과 복잡한 손익 계산으로 한계가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대신 "세계 여론에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끊임없이 고발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개별 협상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을 압박할 큰 구도의 국제적 홍보, 외교전을 펼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일본이 만든 판이 아닌 아예 새로운 판을 짜서 승부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 이어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등의 다자회의에서 공세적인 이슈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일본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 '나쁜 국가'라는 이미지가 확산될 경우 국제적으로 독도 영유권 분쟁화에 성공했다는 일본 측 주장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이날 담화에 대해 "일.한 우호 관계를 대전제로 냉정히 대처하고 싶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이상한 말을 하는가"라며 "중국과 한국은 후회할 때가 올 것"이라고까지 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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