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본무 회장의 수목장을 계기로 친환경 자연장 늘리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이 지난달 친자연적인 수목장을 선택하면서 장례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구 전 회장은 생전에 손수 가꾼 경기도 곤지암의 ‘화담(和談) 숲’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발인하던 날이 부처님 오신 날(5월 22일)이라 관람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부근의 다른 소나무 아래에 조용히 모셔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의 현대 장례 문화는 비(非)선형적 발전을 해왔다. 1998년 최종현 선경(현 SK)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7000원의 비용을 들여 화장을 선택하자 우리 사회에서 화장이 급증한 바 있다. 실제로 94년 20.5%였던 화장 비율은 2016년 82.7%까지 치솟았다. 이번에도 구 전 회장의 소박한 수목장을 계기로 장례 문화에 또 한 번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아직 현실이 사회의식을 못 따라가는 실정이다.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자연장(수목장·잔디장·화초장·혼합장 포함) 선호율은 40%까지 치솟았으나 실제 이용률은 14%에 그쳤다. 대신 납골당 봉안 비율이 63%나 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매년 국토의 약 1%인 998㎢(서울 면적의 1.6배)가 묘지로 잠식된다. 그 대안으로 자연장이 유력하게 떠오르지만 현재 자연장지는 너무 멀고 불편하다. 전국 228개의 기초자치단체 중 공설 자연장지는 48개 지자체의 52곳뿐이다. 이에 따라 기초자치단체마다 자연장지를 의무화하고, 설치 기간이 지난 분묘와 무연고 묘의 봉안 기간이 종료되면 집단매장 대신 자연장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앞서 정부 부처 간 손발부터 맞추는 게 우선이다. 이미 2012년부터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해역에서 해양장(海洋葬)이 권장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해양장의 산골(散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자연친화적인 해양장은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