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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니 부리겠다""우리가 핫바지유" 세상을 바꾼 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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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90) 전 국무총리의 인생역정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기념회가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총리는 "앞으로 이렇게 인사를 나눌 기"가 없지 않나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지난 세월 고난을 감내하며 조국 발전에 땀 흘리며 함께 해주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실정치에 대해선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나 못된 마음이 없어야 한다)'라는 공자의 말을 조언했다.

김종필(90) 전 국무총리의 인생역정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기념회가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총리는 "앞으로 이렇게 인사를 나눌 기"가 없지 않나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지난 세월 고난을 감내하며 조국 발전에 땀 흘리며 함께 해주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실정치에 대해선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나 못된 마음이 없어야 한다)'라는 공자의 말을 조언했다.

우리말 몽니는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국립국어원)이란 의미다. 지금이야 ‘몽니를 부리다’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죽은 말이었던 이 단어를 사전에서 끄집어낸 이가 김종필(JP) 전 총리다. JP는 1998년 12월 당시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인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며 "참다가 안 되면 몽니를 부리겠다"고 선언했는데, 이후 몽니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자의 반 타의 반(自意半他意半)’도 JP가 조탁(彫琢)한 표현이다. 63년 중앙정보부장으로 민주공화당 창당작업을 하다 내부 반발로 쫓기다시피 외국으로 떠난 그는 출국 직전 김포공항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이란 말을 썼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부훈(部訓)으로 유명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표현도 초대 중정부장을 지낸 그의 작품이다. "그런 문장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그는 대수롭잖게 "어떻게 만들긴. 그냥 내 대가리에서 나왔지"라고 답했다.
그는 사자성어나 한자 구문도 즐겨 썼다. 79년 박정희 사망 후 80년 잠깐 자유화 바람이 불었던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 그는 "정국이 아직 엄동(嚴冬)"이라며 봄은 왔으되 아직 제대로 된 봄은 아니라는 의미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표현했다. 90년대 후반엔 줄탁동기(啐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 97년 대선 정국 앞두고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는 의미로), 이심전신(以心傳神, 98년 DJ와는 이심전심을 넘어 신통한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며) 등의 표현으로 화제를 낳았다.
언어 감각이 탁월한 그는 그만큼 논란을 낳은 표현도 썼다. 한때 지역감정을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였던 ‘충청도 핫바지론’도 그가 만든 말이다.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던 1995년 JP는 대전·충남 신년 하례회에서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며 자유민주연합 창당을 암시했다. 6월 치러진 선거에선 "충청도 사람이 핫바지냐"며 지역 정서를 자극했고, 자민련은 충남북과 대전 등 충청 지역 광역단체장을 석권하고 강원에서도 이겼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민련 비례대표 1번에 스스로 앉은 JP는 "해는 저물면서도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고 강변했다. 이때 자민련은 비례대표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정치권에선 JP가 ‘언어의 중용을 아는 정치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가 없었다. 사람을 나쁘게 평가할 때 ‘모자란 사람’ ‘어처구니없는 사람’ ‘고약한 사람’으로 표현한 정도다. JP가 마지막까지 미워한 인물 중 한 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광주 유혈 진압 후 JP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고 해외로 내쫓았다. JP는 전 전 대통령을 지칭할 때도 원색적 단어 대신 ‘고약한 놈’이라고 표현할 따름이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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