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노보노의 응원 “젊은이여, 지금 네 모습도 괜찮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986년부터 만화 ‘보노보노’를 33년째 연재하고 있는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63). 그는 ‘보노보노’를 일컬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만화“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6년부터 만화 ‘보노보노’를 33년째 연재하고 있는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63). 그는 ‘보노보노’를 일컬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만화“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보노보노’는 참 심심한 만화다. 좁쌀처럼 작은 눈을 가진 해달 보노보노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당황할 때 그저 땀을 흘릴 뿐, 웬만해선 화도 내지 않는다.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란 질문처럼 뜬구름 잡듯 주변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주인공 보노보노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이야기다.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 인터뷰 #30년 넘게 인기, 일본서 42권 나와 #“삶이란 꿈이 없이도 흘러가는 것” #전세계 1000만부 팔린 스테디셀러 #“지나친 목적은 자연의 조화 해쳐”

이런 만화가 3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1986년 일본에서 연재가 시작된 직후부터 주목을 받았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책이 팔렸다. 국내에는 95년 만화책으로 처음 소개되고,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보노보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낸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집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다산북스)도 지난해 출간 이후 벌써 20쇄(14만 2000여부 이상)를 찍었다.

작가가 권한 에피소드. 해류에 몸을 맡긴 보노보노를 그렸다.

작가가 권한 에피소드. 해류에 몸을 맡긴 보노보노를 그렸다.

이 심심한 만화가 이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뭘까. 지난주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한한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63)를 서울 합정동에서 따로 만나 이것부터 물었다. 그는 “대부분 만화의 주인공이 ‘자기부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보노보노는 그런 게 없다. 그게 독자들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화 ‘보노보노’는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계속해 얘기한다. ‘가수가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보노보노의 다람쥐 친구 ‘포로리’에게 너구리 친구 ‘너부리’는 이렇게 말한다. “난 되고 싶은 거 딱히 없어, 난 나야. 너는 지금 너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에 무언가가 되고 싶은거야.”

‘보노보노’는 33년째 연재 중이다. 4컷, 8컷 만화를 묶어 120여쪽 정도의 만화책으로 출판하는데, 1986년 시작해 현재는 42권까지 나왔다. 국내에는 20권(거북이북스)까지 출판됐다. 이가라시 작가는 “30년 넘게 연재할 줄 몰랐다. 나 스스로 질리지 않기 위해 내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끌어왔는데, 어느덧 자전적인 만화가 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작할 당시 나도 30대였는데 당시 청년들에게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노보노’라는 제목은 따스함을 뜻하는 일본어 ‘호노보노(ほのぼの)’에서 따왔다. 이가라시 작가는 “호노보노 글자에 ‘탁점’을 찍으면 보노보노(ぼのぼの)가 된다”며 “편안한 만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존의 단어에 점만 찍어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 작가가 쓴 사인. ’목숨 걸지 말고 만화로 보여주자“고 적었다.

인터뷰 후 작가가 쓴 사인. ’목숨 걸지 말고 만화로 보여주자“고 적었다.

‘보노보노’의 또 다른 별칭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호기심 많은 보노보노가 숱한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을 괴롭히지만, 그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하루는 보노보노가 묻는다. “어째서 즐거운 일은 끝나는 거죠?” 숲에서 가장 영리한 야옹이형은 답한다. “해님이 지고 밤이 오고 다시 해님이 뜨고 아침이 오듯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 끝나기 위해서 즐거운 일이 끝나는 거란다.”

이가라시 작가는 “내가 듣고 읽고 겪었던 삶에서 자연스럽게 대사들이 나온다”며 “나는 특히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큰곰 대장의 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숲의 대장 노릇을 했던 큰곰 대장은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덤비는 야옹이형에게 “내가 졌다”며 이렇게 말한다. “살아가는 생물은 그저 살아가는 게 전부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걸기 시작하면, 우리는 진짜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바보 같은 동물이 된다.” 이가라시 작가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누군가와의 조화를 해치는 행위”라며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특히 1권의 첫 에피소드를 추천했다. “‘보노보노’의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고 했다. 내용은 이렇다.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 보노보노가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다. 그러다 물속 기둥에 몸이 걸린다. 보노보노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기둥에 걸려 몸이 돌아가고, 어느 순간 다시 물을 따라 흘러간다. 이가라시 작가는 “한국과 일본, 중국 모두 젊은이들에게 힘든 시기다. 사회는 젊은이들이 뭔가 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그들을 소중하게는 여기지 않는다”며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어하는데, 거창한 꿈이나 성장, 발전 없이 그 자체로도 괜찮다는 걸 보노보노는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금 있는 것도 머지않아 없어집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없어질 것도 지금은 여기 있기도 하고요. 뾰족한 해답이란 건 원래 없을지 몰라요. 애쓰며 고민하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는 게 어떨까요. 흘러가지만 그건 결국 쌓여 의미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가라시 작가가 남긴 말이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