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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아이를 낳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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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구병모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네 이웃의 식탁

베스트셀러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 구병모(42)가 다시 마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물론 소설 지팡이, 짧은 장편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사진)을 출간했다. 그런데 그의 이전 소설들과 느낌과 결이 다르다. ‘마법의 빵’이라는 환상적인 장치를 동원한 『위저드 베이커리』가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났다면 이번 장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작가 스스로 19일 출간 간담회에서 “구병모 하면 으레 사람들이 떠올리는 비현실적인 세계관이나 환상성, 재난 같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이번 소설에서는 완전히 배제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집필 스트레스가 컸다”고 덧붙였다.

구병모 신작소설 『네 이웃의 식탁』 #절망적 저출산 현상 뿌리 건드려 #“여성·어린이 등 약자 무시한 결과”

환상을 등진 새 소설이 그리는 현실은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데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의 절망적인 저출산 상황이다. 구씨는 ‘꿈미래실험주택’이라는 가상의 수도권 주거지의 실패한 공동육아 실험을 통해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불임 현상을 건드린다. 단순히 지원정책의 미비로 공동육아 기획이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의 결함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로도 이어진다.

간담회에서 구씨는 소설의 선명한 메시지보다 더욱 날 선 언어로 정부의 소득 없는 출산장려 정책,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풍토를 성토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대하는 정치인, 관료, 나라 살림 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령 소설 속 ‘꿈미래실험주택’은 아이를 셋 이상 출산했거나 출산할 계획이 있는 부부에게만 입주자격이 주어지는데, 그런 식으로 물량과 숫자를 선택과 배제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실제로 그런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는 재벌이나 상위 1% 바깥의 모든 사람, 특히 여성이나 어린이, 비정규직, 장애인 등을 우습게 여기고 간과한 결과 지금 우리 사회가 치르는 대가로 볼 수 있다. 한두 가지 정책으로 저출산 흐름을 멈출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소설 속 육아 공동체는 실패하지만 건강한 공동체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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