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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싱가포르 북핵 무대에서 보여준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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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정치국제담당

김수정 정치국제담당

‘트윗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2일 열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엄지손가락을 계속 눌러댔다. 인터뷰 메시지도 계속 쏟아낸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의 형체는 없고, 북한에 한·미 연합훈련을 양보한, 그래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만 승리를 안겨준 부실투성이 회담이란 안팎의 비판 여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내게 (회담) 성공이란 그것(북한 핵폐기)이 완료될 때”라며 CVID 원칙 고수를 강조하지만, 1차전은 김정은의 승리다. 트럼프 행정부는 막상 마주해본 북한이 간단찮았다. 한·미 연합훈련(일시 중단)을 내주고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해결 실마리만 먼저 챙겼다.

한·미훈련중단 카드 내주고 주한미군도 전부 돈 얘기 #국내정치와 아메리카 퍼스트에 한·미동맹 희생 우려

트럼프가 ‘리틀 로켓맨’ 김정은과 나눈 ‘세기의 악수’는 감동이었다. 두 사람은 회담 시작 전, 모양도 색깔도 비슷한 성조기와 인공기를 양쪽 각 6개씩 12개(6월 12일을 상징)를 세워 놓고 마주 보며 걸었다. 이벤트가 화려했던 만큼 북핵 해결을 위한 ‘빅딜’이 이뤄졌을 것이란 기대가 쏟아졌다. “역사는 자고로 전통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기인들이 만든다”는 말들도 나왔다.

그러나 과거 수준에도 못 미친 합의와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기대와 감동을 실망과 우려로 바꿔 놓았다. 한·미 연합훈련을 ‘도발적(provocative)’이라 묘사한 것은 물론,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당장은 아니지만)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며 ‘돈’이 절약될 것이라고 했다. “몹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 나이치고는 1만명 중 한 명만 해낼 수 있는 일을 했다. 26세에 집권했기에 강하게 통치할 수밖에 없었다”와 같은, 김정은에 대한 어이없는 칭송은 그를 어르고 달래기 위한 협상술로 봐줄 수는 있다. 김정은에게 핵은 3대 세습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검’이다. 북한과의 사전 테이블에서 한·미 연합훈련 같은 ‘슈퍼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김정은이 내부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북·미 간 후속 조치를 지켜볼 일이지만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한·미 동맹 및 우리의 안보 이해가 걸린 동북아 안보전략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 수준이다.

정치 지도자는 외교에서 두 개의 바퀴를 맞물려 굴리게 마련이다. 국내적·단기적·전술적 (정치적) 이익추구란 작은 바퀴와 대외적·장기적·전략적 (국가적) 이익을 추구하는 큰 바퀴다. 적어도 지금까지 트럼프가 한반도 마당에서 보여준 건 작은 바퀴 굴리기다.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싼 특검 돌파, 중간 선거 승리에 집착해 회담 성사 자체에 매달렸다. 그에게 주한미군 주둔과 연합훈련 등 한·미 동맹 이슈는 돈 문제(북한을 지렛대로 주한미군 분담금을 올리려는 장삿속일 수도 있다)일 뿐,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 중국의 역내 영향력 강화 시도에 맞서는 큰 구도 속 한·미 관계는 없어 보인다. “미국 조야에는 3만4000명이 희생한 한국과 한·미 동맹을 각별히 여기는 공감대가 있다”(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 국무부 과장)와 같은 정서와 가치는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사익과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해 동맹의 값을 어디까지 치를 것인가.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13일 “주한 미군과 한·미 연합훈련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 참모들이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반드시 비용이 절감되진 않는다’고 트럼프를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썼다.

트럼프와 함께 『거래의 기술』을 쓴 작가 토니 슈워츠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내게 수많은 사업 실패를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것처럼 쓰게 했다. 그는 남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피해가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사상적 신념은 없었다. 즉각적 사익에만 몰두했다. 그의 동의로 들어본 수백 통의 전화 통화와 수십번 회의에서 그의 의견에 이견을 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공포와 편집증 풍토가 백악관을 지배한다.”

김수정 정치국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