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출신의 민주주의 이론가인 아담 셰보르스키는 투표용지를 종이돌(paper stone)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18~19세기 유럽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민주주의와 기본적 삶을 쟁취하기 위해 구체제를 향해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졌었다면 오늘날 선거민주주의 시민들은 투표용지로 정치를 심판하게 됐다는 것의 비유인 셈이다. 엊그제 우리 유권자들은 수백만 개의 종이돌을 모아 낡은 보수정당을 심판했다. 투표장에 나온 시민의 다수는 이젠 구체제 정치를 끝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확고하게 내보인 것이다. 이는 자유한국당의 역대급 선거 패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당이 붙들고 있던 냉전시대의 논리, 유한 정치계급의 오만, 문화적 고립이 21세기 시민들과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다.
낡은 보수정당, 혁신 이루기보다 #처절한 권력 다툼 가능성 더 커 #순응에 익숙한 초식형 정치인들 #사고의 DNA도 현실과 큰 괴리 #시민들 손으로 낡은 세력 퇴출과 #새 세력으로의 대체 이끌어내야
이제부터 질문은 낡은 보수정당의 자기 혁신 혹은 몰락의 가속 혹은 일시적 변신의 가능성으로 모아질 터다. 필자는 지금의 한국당이 자기 혁신을 이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까지의 남은 시간 동안 한국당이 자기 혁신을 이뤄내고 역사적 컴백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낡은 보수정당이 혁신을 이뤄내기보다 오히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원내 정치계급들의 처절한 권력 다툼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국회의원 110여 명을 보유한 정당에 주어지는 숱한 보호장치와 특권들(연간 100억원을 훌쩍 넘는 국고보조금, 각종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는 독과점적 권력, 무소속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차별을 통한 선거법상의 기득권 등) 때문에 한국당은 확실하게 파산하지도 않으면서 그럭저럭 버티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
한국당의 자기 변신이 어려운 까닭부터 짚어보자. 정치학자들은 연이은 선거 참패로 퇴출 위기에 내몰렸던 정당들의 놀라운 컴백을 설명할 때 흔히 (1)당내 새로운 혁신세력의 등장, (2)현실을 따라잡는 정책의 대전환을 핵심 동인으로 꼽곤 한다. 이 두 가지 동인에 초점을 맞춰보면 한국당은 개혁과 혁신보다는 이제부터 자유 낙하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첫째, 각 분야에서 나름 성공했다는 50~60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은 기존의 문법을 허물기보다 (일부의 막말과 거친 언사에도 불구하고) 그에 순응하는 데 익숙한 초식형 정치인이다. 예컨대 전임 대통령이 여당인 한국당에 일체의 역할을 허용하지 않을 때 당시 의원들은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했었다. 또한 당 대표가 상식을 거스르는 언행을 계속하며 다수의 유권자와 등을 돌릴 때 의원들은 그저 유권자들이 심판해 주기만을 기다려 왔다.
1968년 미국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흔드는 대변동에도 불구하고 그해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패배하자 민주당의 문호를 여성·소수인종·청년층에게 과감하게 열어젖혀야 한다고 부르짖고 마침내 오늘날의 개방형 경선제를 이뤄냈던 미국 민주당의 젊은 개혁파를 초식형 한국당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 한국당이 붙들고 있던 낡은 정책과 사고의 DNA들은 오늘날의 현실과 괴리가 너무도 크다. 이를 좁히는 건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와도 같다. 국가가 일일이 감독과 지시를 하던 발전주의 시대의 관습으로 IT경제·데이터경제 시대의 유연함과 탈중심성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미국에 모든 것을 의지하던 후견-피후견 관계의 잣대로 오늘날 북·미 접근의 복잡한 현실과 한·미 동맹의 변화를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변신을 향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지만 구시대 유물로서의 한국당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앞서 말한 여러 보호 장치 때문이다. 유권자가 수백만 개의 종이돌을 던지더라도 한국당이라는 공룡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역설은 바로 정치세력의 퇴출과 신규 진입이 지극히 어렵도록 만들어 놓은 정당법·정치자금법·선거법에서 기인한다.
낡은 세력의 퇴출과 새로운 세력의 대체라는 변화를 정당 스스로 해내기 어렵다면 이러한 변화는 시민들이 이끌어야 한다. 시민들은 2017년 대통령 탄핵 과정을 통해 정당과 국회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최종 심판자의 역할을 확인한 바 있다. 대통령을 바꾸고, 낡은 정당을 심판해도 구체제 정치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 생태계(정당법·정치자금법·선거법)를 바꾸어야만 변화가 시작된다. 구체제를 넘어서는 새 출발은 시민들이 정당과 선거정치의 생태계를 바꿀 때 시작된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