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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년간 76억원 쏟은 '내츄럴 시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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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2년, 프리 프로덕션 1년, 촬영 1년, 그리고 후반 작업 1년…. 오는 26일 개봉하는 SF 멜로 '내츄럴 시티'는 투자가 늦어져 일정이 다소 지연된 까닭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제작에 무려 5년이라는 기간을 쏟아부은 대작이다.

마케팅비를 제외한 순제작비만 76억원이 들었다.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어림없지만 이 정도 액수면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충무로에서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악몽'이다. 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롯해 '아 유 레디?''예스터데이'등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패했다. 비난은 주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도대체 그 많은 제작비를 어디에 쓴 거냐'라는 데 집중됐다.

*** 2080년 폐허의 광화문

'내츄럴 시티'는 관객을 쥐락펴락 하는 드라마가 허약하다는 점에서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내츄럴 시티'가 누리게 해주는 '시각적 호사'만큼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2080년 폐허가 된 광화문 거리, 사이보그를 만드는 회사이자 불량 사이보그와 제거 요원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뉴컴사, 미래 도시의 빈민가인 청천 거리, 희망을 상징하는 우주선 '무요가' 등 각종 세트와 미니어처를 동원한 아름답고 웅장한 화면은 한국 영화의 기술적 수준이 한 단계 뛰어올랐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때깔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된 점은 이 영화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필름으로 촬영한 뒤 이를 1백% 디지털로 전환해 후반 작업을 한 덕이다. 1999년 국내 최초의 잠수함 영화인 '유령'에서 어둡고 음습한 공간의 미학을 인정받았던 민병천 감독의 남다른 감각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불법 사이보그를 제거하는 요원 R(유지태)는 사이보그 리아(서린)에게 사랑을 느낀다. 두 사람은 우주왕복선 '무요가'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리아의 남은 수명은 불과 열흘.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DNA 구조가 같은 인간 시온(이재은)을 데려와 영혼을 뒤집어씌우는 '영혼 더빙'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 무단 이탈한 전투용 사이보그 싸이퍼(정두홍)가 뉴컴사에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블레이드 러너'를 참고했다는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와 달리, 민감독은 'SF'보다는 '멜로'를 더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극이 예정된 사랑에 빠지고 거기에 집착하는 남녀의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R가 리아에게, 시온이 R에게 느끼는 연정이나 R와 동료 노마(윤찬)의 애증.경쟁심 등이 빚어내는 주인공들의 감성은 그의 연출 변(辯)처럼 어느 정도 무리 없이 전달되는 듯 싶다.

그러나 '멜로'에 방점을 찍으면서 이야기에 힘을 주지 않은 것은 모순이다. 이 영화에는 파국을 맞는 사랑 빼고는 딱히 꼬집을 '사건'이 없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인물들의 애틋한 감성이 전달되려면 극의 흐름이 살아야 하는데 이 영화는 SF적인 비주얼이 강조되면서 이야기의 맥이 빠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R가 왜 사이보그를 사랑하는지가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수명이 줄어드는 리아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R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은 식이다.

*** 시각효과선 신천지 개척

미답(未踏)의 길을 개척하려한 시도만큼은 두드러진다. 그러나 '내츄럴 시티'는 '이전까지와 다른'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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