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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우 논쟁 정국에 회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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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경제 오홍근 사회부장 테러사건, 김용갑 총무처장관 발언파동, 내무부의「우익총궐기」책자 대량배포 등 일련의 사건을 야당 쪽에서『극우반동세력의 파시스트 적 준 동』이라고 규정, 노태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등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새로운 정치쟁점으로 부각됐다.
특히 이 문제는 테러를 수반 할 정도로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고 문제제기가 집단간 대결, 더 나아가 체제논쟁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점에서 자칫 엉뚱하고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발전될 폭발성을 지니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문제를 여권에선 체제수호 내지는 우익 옹호의 차원으로 끌고 가려는데 반해 야당에선 일련의 사건의 주체를 『우익이 아닌 위험한 극우』로 규정하고 있다. 내무부가 홍보책자로 만들만큼 정부의 구미에 당기는 양동안 교수의 글은 바로 현 집권층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내무부가 10만 부나 인쇄, 배포한 양 교수의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현대공논 8월 호)은『좌익이 이미 사회각분야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데도 우익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익의 총궐기를 제창, 사실상 기존여권의 보호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보책자 발간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일종의 피해 의식과 절박한 위기감들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김 총무처장관의『여소 야대 정국이 좌경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데도 대통령에게 국회 해 산 권조차 없는 현행헌법은 너무 불균형하다. 정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발언엔 약 여의 정국상황에서부터 좌경화, 심지어 현행 헌법체제에까지 회의감을 담고 있고 이것은 양 교수의 글에 나타난 것처럼『이대로 가면 궁극적으론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란 극도의 위기의식을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 부장테러와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우리마당사건은 똑같이 지식 계층에 대한 보복심리가 자리하고 있고 특히 오 부장테러는 그 동기가 군사문화에 대한 공격, 즉 군이라는 본질적인 보호막이 벗겨지는데서 오는 피해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한결 같이 현재의 집권질서붕괴 내지는 도전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 및 군부에선 오래 전부터『이런 상태로 가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돼 왔다.
4· 26총선 후 여소야대 정국은 정부·여당을 무력화 시켰으며 5공 특위·광주특위는 물론 올림픽후의 재 평가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슬기로운 대처방안이 나서지 않는데 다 여권의 미묘한 역학관계는 정국을 더욱 꼬이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6·10 및 8·15 남-북 학생회담 추진 등에서 나타난 반 반공·반미의 좌경확산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군부는 군부 나름대로 「군정종식」이란 대통령선거 당시 구호이래 억울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들이다.
여기서 여권은 일단 위기극복의 해결책을 이념논쟁에서 찾기로 한 듯하며 아울러 좌익확산의 위험상황을 경고하는 한편 우익옹호 론을 줄기차게 펴 나갈 태세로 읽혀진다.
여기서 오 부장테러사건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돌출 된 것이지만 이것이 곧 극우논리라는 야측의 공격을 부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야당이 이들 사건의 주체를 극우세력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은 다분히 올림픽후의 위기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겠다.
김대중평민당총재·김영삼 민주당총재가 모두 기자회견을 갖고「극우세력들의 준 동」을 경계한 것도 이런 이념·체제논쟁이 모종의 특수상황으로 유도해 가려는「음모」의 한 실마리가 아니냐는 우려의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불확실한 올림픽 후의 정국상황을 놓고 볼 때 경우에 따라선 시대 착오적 수구본능이 발동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일련의 사건에서 감지한 듯 하다.
이 문제는 당초 30일로 예정했던 행정 위에서 김 총무처장관 발언을 둘러싼 시발로 자칫 엄청난 극우세력시비로 번질 가능성까지 안고 있었으나 여당이 올림픽과 청와대영수회담을 이유로 행정 위 소집을 일단 늦추기로 함으로써 논쟁의 불길이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야당 쪽도 뒤에 숨겨진 여권의 의도와 논쟁에서 수반될 여러 가지 껄끄러운 점 때문에 사태의 확산을 원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권의 의중이 분명한 이상 올림픽이 끝나고 정국이 시끄러운 상황이 되면 이 문제는 언제든 고개를 들 잠복 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 하겠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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