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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한국당은 정체성 잃은 권력패거리, 팍 망해야 정신 차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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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호 27면

이원종 전 정무수석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5일 ’적폐 청산을 한다는데, 그 적폐 속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없고, 박근혜·이명박만 적폐냐“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5일 ’적폐 청산을 한다는데, 그 적폐 속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없고, 박근혜·이명박만 적폐냐“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팍 망해서 보수 정치권이 새로운 진로를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나중에 경쟁하지 않겠는가 싶어요.”

국민 무서운 줄 아직도 몰라 #이번 선거 뒤 정치권 개편돼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집권 #그 시절엔 청산할 적폐 없었겠나 #문 대통령이 얹혀 있다고 하지만 #복잡한 권력 관리할 능력 있어 #안철수에게 좀 기대했는데 #비판만 했지 비전 제시는 못해

이원종(79) 전 정무수석은 6·13 지방선거 전망을 묻자 오랫동안 참았던 듯 불만을 토해냈다.

“민주당도 싫지만, 한국당도 더 싫어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 정치권이 개편돼야 할 것 같아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잖아요. 정치인들이 국민을 전혀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냥 유권자로만 생각하지. 특히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해도 표가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이야.”

그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시절 4년간 정무수석을 맡았다. YS 퇴임 1년 전인 97년 2월 정무수석에서 물러난 뒤 이제껏 아무 공직도 맡지 않았다. 5일 본사에서 만난 그에게 보수의 진로를 물었다.

“한국당이 진짜 보수를 대변하느냐 이게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민주당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이 찍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실망해서 나는 투표를 안 할 생각입니다. 이제까지 투표를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데, 찍을 데가 없어요. 국민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보수가 뭡니까.
“대한민국의 가치를 인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 민주, 평등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예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념보다는 ‘이해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것 같아. 한국당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도 모르는 것 같아요. 보수라고 하지만 나는 권력 패거리라고 봅니다.”
이념 중심 정당이 생겨도 양대 정당으로 흡수되고 마는데.
“우리나라는 정당이 먼저 생겨서 정권을 잡은 게 아니고, 정권을 잡은 뒤 정당이 생겼어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모두 마찬가지죠. YS·DJ까지는 사람 중심 정당이었어요. 그때까지는 ‘민주화’라는 공동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우리가 추구할 그 공동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사람 중심이 아니라 국민 중심 정당이 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어요.”
보수가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이 있어야 되겠죠. 지금은 정권을 위한 정당이지 이념이나 비전, 정체성을 위한 정당은 없다고 봅니다. 국민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요구해야 하는데, 영합만 하지 국민 역량을 규합하기 위해 쓴소리하는 정치인은 없잖아요.”
오래 걸릴까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를 대변한 정당이 폭삭 주저앉으면, ‘이제는 이거 가지고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YS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적폐 청산은 같은 맥락 아닌가요.
“다르죠. YS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세력이 싸울 시기는 지났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30여 년에 걸친 상명하복의 군사문화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잖아요. 그래서 청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사실 그 사람들도 10년간 집권했잖아요. 그 적폐 속에 10년은 없느냐 이거예요. 역사의식에 양심이 없다고 봅니다. 자기네 10년은 공백이고, 박근혜·이명박만 적폐냐고요.”
YS정부 때도 국정원 돈을 갖다 써 문제가 됐죠.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안기부(현 국정원)에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예산이 있었어요. 국회 예산 심의가 되지 않는 예산이 안기부 예산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각 부처가 쓰는 겁니다. YS 때 굉장히 많이 줄었어요. 야당에도 많이 갔다고 합니다. 그것은 한국적 국가 관리방식의 하나지, 특정 정권의 적폐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자기네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정무수석이 통치자금을 갖다 쓸 일이 많을 텐데.
“대통령에게 갈 돈을 정무수석한테 주지는 않죠. 바로 주지. 나는 못 받아봤어요. 이제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당에서 매달 5000만원씩 줬어요. 그걸로 기자들, 정치인들과 밥 먹는 데 4000만원 정도 나갔어요.”
지역 중심 투표가 안 변한다고 하시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상도 쪽 판세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한국당 책임이라는 겁니다. 한국당에 대한 보수 세력의 신뢰도가 바닥이 됐습니다. 저건 없어져야지, 새롭게 출발을 해야지. 선거에 한 번 이긴다고 바뀔 정당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이 정부처럼 이념 중심으로 모이면 다른 이야기에 귀를 막는 경향도 있지 않습니까.
“현재 집권층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요. 보수 정부는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진보는 진화하는데 보수는 지체하네요.
“진화될지 분열이 될지 모르겠어요. 저런 결합을 계속할 것 같지는 않아요.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이 있고, 덜 가진 사람이 있고, 소외된 사람이 있을 것 아니에요.”
이전에는 보수로, 이제 진보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합니다.
“박근혜·이명박 책임이 제일 크죠. 사람 중심으로 사람을 썼어요. 진보는 어느 정도 분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 분열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허수아비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그런 복잡한 권력을 관리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겁니다. 아무도 미워할 수 없고, 아무도 적이라고 생각 안 하게 하는 그것도 재주라고요.”
이원종 정무수석(왼쪽)이 1996년 9월 18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예방해 다음날로 예정된 여야 영수회담 일정을 전달했다. [중앙포토]

이원종 정무수석(왼쪽)이 1996년 9월 18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예방해 다음날로 예정된 여야 영수회담 일정을 전달했다. [중앙포토]

김영삼 정부도 정권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뺏기지 않았습니까.
“나는 뺏겼다고 생각 안 합니다. 대통령 퇴임 후에 YS에게 ‘DJ가 대통령 되는 게 순서라고 생각 안 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이회창 당선을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라며 그냥 웃으셨어요. 그러면서 ‘그런데 이회창은 감이 아니더라’고 하셨어요. 이인제에게 가라고 해도 비서실장만 보냈죠. 민주화 투쟁을 해보면요, 그때 아무것도 안 하고 잘 나간 사람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오는 게 정당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선거 직전 정치자금 수사를 중단한 것도 큰 지원 아니었나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DJ를 수사하면 보복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은 보복은 안 해요. 정치하면서 YS가 비교적 깨끗하게 했지만, 돈이 어디서 납니까. 걸면 다 걸리지.”
『국민이 만든 대한민국』이란 책을 쓰셨는데, ‘촛불 집회’도 관계가 있습니까.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해요. 서로 다른 세력들이 같이 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것을 잘 조합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정치력이 있으면 촛불이 안 나옵니다. 촛불이 안 나오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봐요. 언제까지 촛불에 맡길 거예요.”
태극기 집회는 어떻게 보세요.
“태극기든 촛불이든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면 거리정치는 있기 마련이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선거유세 안 나가는지 못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나가나 안 나가나 변화는 없을 겁니다.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면 진짜 큰일이죠. 차라리 한국당이 망하고 민주당이 둘로 갈라져서 경쟁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게 아닌가.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당이 정신을 차리던가, 아니면 정신을 차린 정치인이 나오던가. 난 안철수가 좀 그럴 수 있을 거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친구도 남 비판할 줄만 알지 자기 것(비전)을 내놓을 줄 모릅니다.”

YS 때 정무수석 4년 2개월 … 버럭 화 잘 내 ‘핏대’ 별명

이원종 전 수석은 1974년 경복고 2년 후배인 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소개로 YS를 만났다. 그때부터 공보비서로 일하며 상도동 가신이 됐다. 김명윤 전 의원이 이모부.

85년 이모부 대신 삼척-동해-태백에, 88년과 92년에는 서울 강서 갑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93년 YS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10개월간 공보처 차관, 4년 2개월간 정무수석비서관을 맡았다. 정무수석 시절 그는 ‘실세’로 통했다. 버럭 화를 잘 내는 그를 기자들은 ‘핏대’라고 불렀다.

97년 2월 정무수석을 그만둔 뒤 3~4년간 야생화를 찍어 그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한국 야생화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아요. 아주 초라해 보입니다. 이상한 것이 환경이 안 좋은 데서 자란 야생화가 더 예뻐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하고 너무 비슷합니다.”

환갑이 지난 2000년 다시 공부를 시작해 2002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석사, 2005년 한양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까지 인하대·명지대·한양대에서 강의했다. 삼척 출신으로 고려 때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은 동안(動安) 이승휴 사상선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YS는 국정원 돈을 갖다 썼나?
DJ 당선 때 YS가 한 말은?
이원종 전 정무수석의 증언-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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