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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그라운드의 '물방개'와 '두더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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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7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A컵 32강전 고양 국민은행(N리그.실업)과 울산 현대(K-리그)의 경기.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다 가끔 비까지 흩날려 관중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VIP석은 축구계 원로와 중진 지도자들로 북적거렸다. 조영증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 센터장, 김진국 대한축구협회 기획실장, 박성화 전 청소년대표팀 감독, 여기에 김호곤 축구협회 전무도 경기장을 찾았다.

이들은 함께 경기를 지켜보며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많았고, 재미있는 표현들도 등장했다.

울산의 국가대표 출신 한 선수가 역습 찬스에서 패스를 받은 뒤 엉뚱한 방향으로 볼을 몰고가는 바람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 "저런 게 내가 자주 얘기하는 '물방개 플레이'야. 물방개를 손으로 잡고 있다가 물에 떨어뜨려 놓으면 사방팔방 제 가고싶은 대로 가거든. 저 선수도 볼만 잡으면 어디로 갈 지를 몰라. 패스를 받기 전에 내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 지를 생각하고 '퍼스트 터치'를 해야지."

또 한 선수가 수비진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쪽으로 드리블을 하다 볼을 뺏겼다. 한 사람이 말했다. "저기 고개 푹 숙이고 땅만 파는 두더지가 또 있네. 고개를 들고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게임을 풀어가야지."

볼만 잡으면 습관적으로 멈춘 뒤 다음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정거장'이라고 했다. "현대 축구는 속도 싸움인데 저렇게 템포를 죽여버리면 동료들도 맥이 빠지지." 지적을 받은 선수들은 주로 울산 쪽이었다. 프로이다 보니 좀 더 나은 플레이를 해 주기를 원하는 선배들의 안타까움이 담긴 표현들이었다. 그런데 이날 울산은 무기력한 경기 끝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이우형 국민은행 감독은 "N리그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반면에 K-리그 팀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프로 팀에 일침을 가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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