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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레터]운명의 6월 셋째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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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호 면

‘안녕하세요. 파출소 근무하는 20대 남자 경찰관입니다. 근무한 지는 3년이 다 돼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112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5번의 폭행을 당했습니다. 입건한 사례만 5건이고, 맞아도 참고 넘어간 사례까지 하면 20번이 넘습니다. 누구에게 맞았냐고요? 바로 술 취한 시민들에게서입니다. 이유없이 그냥 맞았습니다. 정말로 이유없이. 한번은 따귀를 맞았고, 한번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고, 한번은 가슴을 맞았고, 한번은 얼굴에 침을 맞았고, 한번은 저를 안고 넘어져 무릎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일을 저는 3년도 안되서 20번을 넘게 겪었습니다. 최근 저희 어머니가 피멍 든 저를 보면서 울면서 그러시더라고요. 경찰 맨날 욕만 먹고 인정도 못 받는 거 다치기만 하고 당장 그만둬!! 근데 저는 국민을 지키는 멋진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VIP 독자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있는 어느 20대 경찰관의 글로 이번 주 레터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공권력이 매 맞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5~17년 공무 수행 중에 시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찰관, 소방공무원, 해양경찰관의 수가 2048명에 달합니다. 매 맞는 공권력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어제오늘 일도 아닙니다. 지난 달에는 51살의 여성 119구급대원이 취객에게 맞은 뒤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 있는 경찰관의 청원 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 있는 경찰관의 청원 글

성숙한 사회일수록 제복과 공권력을 존중합니다. 공권력은 있을 수 있는 폭력과 위험, 사고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정치ㆍ경제적으로 이미 성숙한 사회에 접어들었는데도 우리의 공권력은 왜 존중받지 못할까요. 슬픈 원죄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민시대, 독재를 겪은 역사가 그렇습니다. 권위주의 시대 공권력은 불의로 기억돼 있습니다. 일본 순사가 그랬고, 박정희ㆍ전두환 시대의 군과 경찰이 그랬습니다. 그 시절 제복은 평범하고 선한 국민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그 불의에 저항하는 건 정의였습니다. 1970년대, 80년대 대학 생활을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늘 공권력은 타도의 대상이었고, 저항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공권력은 무시의 대상이 돼버렸습니다. 공권력의 수요자인 시민은 교통경찰의 정당한 단속에도 소리 높여 대드는 게 당연시됐고, 공권력의 공급자인 제복들은 자신들의 원죄에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고리는 끊어져야 합니다. 2012년 미국 워싱턴 D.C의 광장에서 ‘1% 대 99%’를 내건 ‘OCCUPY(점령) 시위’를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당시 수백명의 시위대를 경찰관 1명이 “지금 그 위치에서 한 발짝 앞으로 전진하면 실정법 위반이 된다”고 외친 뒤 호루라기 하나로만 통제하는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서울에서 온 경찰 간부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서울에서라면 수십 명의 전경이 필요했을텐데”라고 연신 부러워했습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복공무원 공무집행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최근 잇따른 소방구급대원, 경찰 폭행 사건등과 관련해 정부부처 수장들이 제복공무원을 향한 폭력을 중단해 줄 것을 호소했다. 2018.6.4/뉴스1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복공무원 공무집행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최근 잇따른 소방구급대원, 경찰 폭행 사건등과 관련해 정부부처 수장들이 제복공무원을 향한 폭력을 중단해 줄 것을 호소했다. 2018.6.4/뉴스1

 지금의 공권력은 권위주의의 시녀도 아니고, 타도돼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룰’의 집행관입니다. 6월4일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ㆍ소방청장ㆍ해양경찰청장과 함께 ‘제복 공무원이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위해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이란 긴 발표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제복공무원은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제복공무원의 땀과 눈물 덕분에 안전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제복의 명예가 사라지고 사기가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복공무원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고, 자랑스런 아들 딸이며, 사랑스러운 친구 연인입니다.”
이제 공권력에 대한 낡은 기억들을 떨쳐낼 때입니다. 공권력도 원죄에 고개를 파묻고 있지말고 공정하고 엄격한 집행을 다짐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국회는 법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제복이 존중받는 사회가 선진사회입니다.

오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 전경. [로이터] An undated handout photo of Capella hotel on Sentosa island, Singapore, released June 5, 2018. [로이터]

오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 전경. [로이터] An undated handout photo of Capella hotel on Sentosa island, Singapore, released June 5, 2018. [로이터]

 2018년 6월 셋째주 우리에겐 운명같은 시간들이 다가옵니다.
①12일 싱가포르에선 한반도의 미래 운명을 좌우할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열립니다. 트럼프의 비핵화와 김정은의 체제보장이 어떤 모습으로 논의되고 합의될지에 따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외교 지도가 새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트럼프처럼 협상하라』는 책에서 ”나는 스스로를 그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일을 과감히 벌이는 별종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습니다. 그 ‘별종’의 협상 기술은 우리의 사고 범위를 넘습니다. ‘도널드는 딜 메이커로서 숲을 보는 법을 배웠고, 나무들은 아랫사람들이 보도록 했다’란 대목도 있습니다. 비핵화에 비전문가인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낼지가 관전포인트입니다.
②13일 전국에선 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6ㆍ12 북미회담이 한반도 운명과 관련돼 있다면, 6ㆍ13 지방선거에는 ‘내 고장의 4년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시도지사와 시장군수, 지방의원들은 내가 낸 세금을 어떻게 쓸지를 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케일이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보다 결코 작지 않습니다. 어지러운 외교 게임 와중에 치러지는 선거다보니 관심도가 너무 낮습니다. 어느 날 마주친 안철수 후보가 “명함을 돌리는데 만나는 시민들 중 몇몇 분들이 ‘선거철인가? 무슨 선거에 나왔느냐’고 물어 황망한 적이 있었다”고 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았으면 불평하지도 말라는 정치 속담이 있습니다. 불평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13일 수요일 투표합시다.

중앙SUNDAY는 이번 주 은퇴 후 집과 요트를 팔고 6년째 스마트폰과 에어비앤비 앱을 이용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미국의 70대 노부부 얘기를 프런트로 다룹니다. 소유하지 않으면 자유롭다는 이들의 얘기 속엔 ‘시니어 노마드(nomad,유목민)’의 소확행이 담겨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팩트체크도 합니다.  ‘펜으로 그리는 비행산수’에선 평양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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