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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1위는 아이코스? 글루? 그뒤엔 담배회사 꼼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서 남성 흡연자가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스1]

7일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서 남성 흡연자가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스1]

'아이코스 타르 함유량 9.3mg으로 1위'
'글로 타르 함유량 20.2mg으로 1위'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에서 나온 두 가지 내용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8월부터 국내에 출시된 아이코스(앰버), 글로(브라이트토바코), 릴(체인지) 3개 제품의 배출물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나온 타르는 대체로 일반 담배보다 많은 편이었다. 타르는 여러 유해 화학물질의 복합체다. 다만 제품에 따라서 수치는 나뉘었다. 국제 공인 분석법인 ISO(국제표준화기구)법으로 실험했더니 타르 함유량은 아이코스(9.3mg)-릴(9.1mg)-글로(4.8mg) 순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공인 분석법인 HC(헬스 캐나다)법을 적용한 결과 타르 함유량은 글로(20.2mg)-아이코스(18.8mg)-릴(17.1mg) 순으로 바뀌었다. ISO법에서 타르가 제일 적었던 글로가 HC법에선 거꾸로 1위가 된 것이다. 반면 ISO법에서 타르가 제일 많았던 아이코스는 HC법에선 2위였다.

똑같은 타르인데 왜 분석법에 따라 수치ㆍ순위가 달라지는 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분석 방식의 특성과 담배 필터에 들어가는 구멍(핀홀)에 숨어있다. 우선 ISO법은 흡연자가 담배 필터를 절반만 무는 걸 가정하고 배출물을 포집한다. 그러다 보니 담배에서 나오는 배출물(연기ㆍ증기)이 포집통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일부 새나갈 수 있다.

반면 HC법은 좀 더 정교하게 설계돼 아예 담배 자체를 포집통 안에 집어넣는다. 필터에서 배출물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흡연자에 더 가까운 분석법으로 분류된다. 이번 분석에서 확인된 니코틴 수치도 ISO법(아이코스 0.5mg, 릴 0.3mg, 글로 0.1mg)보다 HC법(아이코스 1.4mg, 글로·릴 0.8mg)에서 더 높게 나왔다.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 유해성분 분석 결과. ISO법에선 타르 함유량이 3위였던 글로 제품이 HC법에선 1위로 바뀌었다. [자료 식약처]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 유해성분 분석 결과. ISO법에선 타르 함유량이 3위였던 글로 제품이 HC법에선 1위로 바뀌었다. [자료 식약처]

담배 필터로 배출물이 빠져나가는 건 어떤 원리일까. 제조회사가 만들어놓은 구멍의 영향이 크다. 흡연자가 필터를 반만 무는 걸 가정하는 ISO법 등을 고려해서 나머지 필터 절반에는 구멍을 더 많이, 크게 집어넣는 식이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 "담배 필터 속 구멍을 늘리면 흡연자가 배출물을 빨아들이기 전에 그 구멍으로 배출물이 일부 빠져나가 희석된다"고 설명했다. 촘촘한 구멍이 많을수록 ISO법에서 검출되는 니코틴ㆍ타르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HC법에선 배출물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해당 수치가 더 높게 나오는 편이다.

이성규 센터장은 "글로가 ISO법에선 타르 함유량이 적었는데 HC법에선 반대로 나오는 건 구멍을 많이 넣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도 8일 식약처 기자회견에서 "ISO법과HC법에서 3개 제품의 순위가 바뀐다. 확신은 못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회사에서 (유해성분) 측정 시 (함유량이) 희석되도록 구멍을 넣어 제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연구원이 7일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출물 포집 및 추출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식품의약품안전처 연구원이 7일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출물 포집 및 추출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저타르ㆍ저니코틴이라고 강조하는 일반 담배 제품도 비슷한 원리다. 담배 업체가 실제로 담배에 들어간 니코틴ㆍ타르를 줄이는 게 아니라 담배 필터 내의 미세한 구멍을 더 크게, 더 많이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ISO법으로 실험할 때 그만큼 배출물이 많이 빠져나가서 니코틴ㆍ타르 함유량도 희석되는 것이다.

이성규 센터장은 ”보통은 흡연자들이 필터 절반만 물고 피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에 구멍이 많으면 아무리 빨아도 원하는 만큼의 니코틴이 흡입되지 않으니 무의식적으로 필터를 입 안으로 더 밀어 넣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품에 표기된 타르ㆍ니코틴 수치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흡연 습관이 달라지면서 결과적으로는 다른 담배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의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신

전문가들은 분석법에 따라 제품별 니코틴ㆍ타르 함유량이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똑같이 유해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금이라도 덜 유해한 제품을 찾으려고 고르기보단 '금연'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식약처 분석에서도 타르 함유량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더 높게 나왔다. 또한 포름알데히드 등 1군 발암 물질도 여럿 검출됐다.

이성규 센터장은 "불완전 연소는 완전 연소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은 낮은 온도로 가열하기 때문에 담배 스틱을 완전히 태우지 못한다“면서 "오히려 찐 담배라서 불완전 연소에 따른 독성 물질이 더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민경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도 8일 기자회견에서 "타르 양이 많다는 건 기존 궐련 담배보다 더 많은 유해물질, 다른 유해물질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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