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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미 총영사관 ‘수상한 음파’ 습격 … 외교관 3명 뇌손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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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광저우 캔턴 플레이스의 아파트 단지. 이 곳에 살던 미국 총영사관 직원들은 집에서 정체불명의 미묘하고 불쾌한 소리를 들은 후 건강에 이상을 느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중국 광저우 캔턴 플레이스의 아파트 단지. 이 곳에 살던 미국 총영사관 직원들은 집에서 정체불명의 미묘하고 불쾌한 소리를 들은 후 건강에 이상을 느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곤충 소리, 또는 바닥에서 금속을 끄는 듯한 미묘하고 불쾌한 소리.’

곤충 소리, 바닥에 금속 끄는 소리 #두통·불면증 등 건강 악화 호소 #본국으로 대피 … 미 의료팀 급파 #2016년 쿠바 미 대사관도 유사사례

지난 해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들이 정체불명의 소리로 인한 건강 악화를 호소한 데 이어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해 미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날 알 수 없는 소리에 노출돼 외상성 뇌손상(Traumatic Brain Injury·TBI) 증세를 일으킨 주(駐) 광저우 총영사관 근무자 2명을 본국으로 대피시켰다. 앞서 같은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이상한 소리에 시달리다 가벼운 TBI 증세가 확인돼 최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미국 광저우 총영사관 근무자가 이상한 소리와 연관된 건강 이상으로 본국에 돌아간 피해자는 3명으로 늘어났다. 미 국부부는 지난달 31일 본국 의료팀을 광저우에 파견해 총영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 및 직원 170명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국무부 대변인은 NYT에 “왜 이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영사관 직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자세한 검사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NYT에 따르면 6일 미국으로 귀국한 직원 중 한 명은 영사관의 보안 엔지니어링 책임자인 마크 렌지다. 그는 귀국 전 인터뷰에서 지난해부터 3~4회 이상 집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이후 두통과 불면증,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렌지가 살던 곳은 지난 달 같은 증세로 귀국한 외교관이 살던 광저우 캔턴 플레이스의 고층 아파트다. 이들은 아파트에서 들려온 정체 불명의 소리가 “모호하지만 비정상적이며 압박감이 느껴지는 소리”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피해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의 ‘음파 공격(sonic attacks)’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일단 의심하고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범위인 16~2만Hz(헤르츠) 밖에서 작동하는 초저주파 및 초음파를 쏴 귀와 뇌에 피해를 줬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의 주재국이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지난 5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청문회에서 “기관 간 협력 체계를 발동시켜 설명되지 않은 (해외 거주) 미국인들의 건강 문제에 대처하겠다”며 “부상의 정확한 성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중국에서의 사례로 2016년부터 이어진 미국 외교관 대상 ‘음파 공격’ 미스터리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번 광저우 영사관 직원들의 증상은 지난해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겪은 피해와 거의 일치한다.

아바나에 있는 쿠바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 중 일부는 2016년 말부터 청력 손실,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해왔고 검사 결과 대사관에서 일하는 50여 명의 외교관과 그 가족 중 여러 명이 외상성 뇌손상 및 영구 청력 상실 등의 의학적 진단을 받았다. 또 시력과 균형 감각 이상, 수면장애 및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 역시 주로 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한밤 중에 깼다고 말했는데, 그 소리는 “곤충 소리 같기도 하고, 바닥에 금속을 끄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고 CNN은 전했다.

호소가 이어지자 지난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쿠바로 건너가 음파 공격과 관련한 조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쿠바 정부도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대사관 근무자 24명을 귀국시켰고, 자국 외교관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쿠바 외교관 15명을 미국에서 추방했다.

광저우 영사관 사례로 중국에서 근무하는 미 공무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미 국무부도 중국 내 다른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며 해외에 주둔하는 정부 요원 및 그 가족들의 건강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보건위생팀을 새로 꾸렸다.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이 음파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독성(毒性) 물질이나 순간적으로 유해한 소리를 내는 청취 장치의 가동, 혹은 집단적인 불안감에 의한 증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쿠바에서 증상을 호소하며 귀국한 사람들 중 25%만이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NYT는 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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