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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투기꾼들,부동산 대박의 '촉'을 믿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0년 가을 압록강변을 따라 길게 좌우로 도시가 발전하고 있던 단둥(丹東)시 강변. 국내 건설사 A부사장은 이 외딴 도시에 쑥쑥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의 마천루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단둥,중국과 한반도·서해가 만나는 꼭지점 위치 #동북3성 물류 관문이자 대북 교역 몰리는 창구 #개혁·개방 초기 홍콩과 접경 선전엔 개발붐 #북한 제재 완화 대비 부동산 투기자금 유입 #단둥시 한 주 사이 두 차례 고강도 투기대책 발표 #5년간 거래 금지시키고 외지인에겐 대출도 제한 #

“제조업도 그저그렇고 전형적인 상업 위주의 소비 도시 같은데 뭘 보고 저렇게 고급 아파트를 올리는 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단둥시 전경. 압록강 철교 건너 신의주 시내가 보인다. [사진 SK부동산사업부 캡처]

단둥시 전경. 압록강 철교 건너 신의주 시내가 보인다. [사진 SK부동산사업부 캡처]

필자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내다본 장기 베팅이라고 얘기해주면서도 그 정도 설명으로 속 시원해질 리가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핵개발과 연평도 포격ㆍ천안함 침몰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을 둘러싼 환경이 도무지 출구가 안보이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단둥은 시 서부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며 계속 고급 아파트를 풀고 있다.

중국인들은 뭘 보고 이렇게 지어대는 것일까.  

일단 A부사장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단둥이 어떤 도시인지 우선 위치를 살펴보자. 단둥은 서해의 동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산에서부터 달려온 압록강이 서해 바다 앞에서 몸을 푸는 하구 도시다. 서쪽으로 40여km 달리면 둥강(東港)항이 있다. 이 항만은 단둥시의 경제권역에 속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북ㆍ중 접경의 단둥은 동북3성의 관문이다. 서해와 만주를 잇는 항만과 동북 3성 요지가 고속철ㆍ고속도로로 연결돼 있다. 

중국 국내선이긴하지만 공항도 있다. 전형적인 연안 무역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관문을 통해 중국의 동남부 경제지대의 공업제품과 해외의 자원이 중국 동북부로 유입되는 등 물류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게다가 압록강을 사이로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대북 교역량의 70% 이상이 집중된다. 기존의 위화도 인근 압록강철교 말고도 서쪽 신압록강대교도 준공돼 개통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신압록강대교 전경 [사진 중앙포토]

신압록강대교 전경 [사진 중앙포토]

동북 3성과 대북 물류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도시 전역이 활기를 띄는 곳이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대북 교역이 급감하고 동북 3성의 전통 제조업이 구조조정 등 한파를 맞자 단둥의 각종 경제지표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2~3년 이후 길게는 4~5년 이후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건설업은 이런 경기 퇴조 기조가 두드러졌다.

2016년 단둥시의 고정 자산 투자는 전년의 52%로 추락했다. 건설 부문 투자가 59.8%로 가장 하락폭이 컸다. 부동산 개발 투자는 6.4% 위축됐다(※2016년 단둥시 국민경제ㆍ사회발전통계공보).

그랬던 단둥의 부동산 경기가 불이 붙었다. 2018년 6월12일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과 북중이 정상간 만남을 거듭하면서 북한의 경제가 변화의 물살을 탈 조짐을 보이면서다. 5월16일 중국 통계국이 발표한 ‘4월 70개 도시 주택 가격 변동’에 따르면 단둥 신규 주택은 전월 대비 2% 상승했다.

웨량다오 전경 [사진 팡닷컴]

웨량다오 전경 [사진 팡닷컴]

중국 전역의 상위 70개 도시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홋가는 하룻밤 사이 50%가 뛰기도 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북한의 ‘황금평 경제특구’ 건너편 단둥 랑터우 신도시와 압록강 하중도(河中島) 웨량다오(月亮島,월량도)의 부동산 매물은 거의 사라졌다는 전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당국은 21일 규제를 대폭 강화한 ‘2차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진화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임기 1기 때부터 틀어막고자 했던 11급 대도시(1선 도시)의 부동산 투기 바람이 잘 잡히지 않아 고심인데 이 바람이 인식 저멀리에 있는 변경 도시로 옮겨 붙었으니 눈뜨고 볼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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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5월14일 단둥시 정부는 ‘의견’ 형식의 1차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단둥신구(丹東新區) 등을 투기 억제지역으로 지정했고 투기 자금 유입을 제어하기 위해 외지인들이 이 지역에서 구매한 신규 주택은 2년이 지나야 거래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돈이 묶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한탕성 투기 세력에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부동산 열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급기야 일주일 만에 시 당국이 2차 대책을 서둘러 내놓게 된 것이다. 이번엔 ‘통보’ 형식이다. 규제에 대한 당국의 집행 의지를 담은 형식이다. 외지인들은 신규 주택을 사면 앞으로 5년간 거래를 금지하는 한편 자금줄도 죄기 시작했다. 외지인에 대해선 부동산 구매시 대출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또 외지인의 두 번째 주택 매입에 대해선 계약금을 포함한 선수금 비율을 6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물론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주택에 대해선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투기꾼 입장에서 6ㆍ25전쟁 이후 거의 65년만에 처음 온 기회인데 손바닥만한 단둥에서 새주택이고 말고 할 거 없이 다 쓸어담아야 한다고 본다면 불길 잡기가 녹록치 않을 것이다.

다시 A부사장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안개 속 북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언젠가 찾아올 부동산 대폭등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올해가 아니면 내년, 내년 아니면 내후년, 아니 5년 10년 뒤라도 어떤가 싶은 장기 투자 말이다. 그 사이 손 바뀜이 여러 차례 있을 것이고 털고 나간 사람이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나 언젠가는 북한도 개방의 물결이 휩쓸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중국인들에겐 시험의 비기 같은 개방의 실질적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족보’가 있다.

바로 중국인들 뇌리에 각인된  선전(深圳)의 천지개벽이다.

선전은 1978년 개혁ㆍ개방 방침이 천명되고도 몇 년째 태고적부터 어촌으로 살아왔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륙에서 개방 원칙을 재천명하면서 힘을 실어주자 80년대초부터 홍콩ㆍ대만과 동남아 화교 자본이 몰려들었다.

돈이 풀리고 개발 바람이 불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은 이후 몇 차례의 출렁임을 거쳤지만 40년이 흘러 지금와서 보니 결과는 우상향 폭등이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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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단둥은 중국의 동남부 연안 경제 지대와 서해로 연결된 항만도시이자 물류거점이고 북한의 최대 대외 교역 관문이다. 부동산 대박의 팩트와 ‘촉’으로 무장하고 꿈을 쫒는 중국인 투기꾼들에게 왠만한 규제책이 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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