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당나귀 대출' 성공할까?…사물인터넷 기술로 도난 방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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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의 역사는 ‘당나귀 대출’에서 시작했다. 옛 조흥은행(신한은행에 합병)의 전신인 한성은행이 주인공이다.

1897년 설립 직후 고객이 없어 곤란을 겪던 한성은행에 대구에서 올라온 상인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물건을 떼다 대구에 가져가서 장사하고 있는데, 물건 살 돈이 부족하니 대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나귀. [중앙포토]

당나귀. [중앙포토]

은행에선 이 상인의 신용도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집문서나 땅문서도 대구에 있어 가져오기 힘들었다.

은행은 상인이 타고 온 당나귀를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 살아있는 동물을 담보로 잡은 탓에 아침저녁으로 당나귀 먹이를 챙겼다.

결국 상인이 돈을 갚지 못해서 은행 임원들이 당나귀를 공용 승용차처럼 타고 다녔다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현대 은행에서도 움직이는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동산 담보대출’을 한다. 물론 당나귀 대출은 아니다. 주로 공장의 기계설비나 창고의 재고자산이 담보물이 된다.

동산 담보대출은 부동산 대출보다 훨씬 까다롭다. 은행원들이 웬만해선 안 하려고 하는 이유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가 문제다.

부동산은 담보물의 가치가 하락하는 위험은 있어도, 담보물이 어디로 도망갈 일은 절대 없다. 움직이는 자산, 즉 동산을 담보로 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담보물의 분실ㆍ도난ㆍ훼손의 우려가 있다. 대출자가 담보물을 빼돌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은행원이 공장이나 창고 앞에서 밤낮 쉬지도 않고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동산 담보물에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가 23일 발표한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전략’에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예컨대 A은행이B공장에 돈을 빌려줄 때 공장 기계설비에 사물인터넷이 가능한 무선 단말기를 붙이는 식이다. 무선 단말기에선 기계의 위치 정보와 가동 여부, 가동률 같은 정보를 은행 관제센터에 보내준다.

그러면 은행원이 가서 감시하지 않아도 은행에선 기계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몇시부터 몇시까지 가동됐는지, 월간 가동률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땅이나 건물 같은 부동산 담보는 부족하지만, 좋은 기계를 들여와 열심히 공장을 돌리는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좋아질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했다.

그래도 은행원의 입장에선 여전히 부동산 담보대출보다는 불편한 점이 많다. 우선 담보물의 가치 평가 문제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는 시세 확인이 어렵지 않고, 비교적 쉽게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 같은 동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부동산보다 훨씬 까다롭다. 가격 변동이나 가치 하락의 위험도 크다.

혹시라도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했을 때 은행이 담보물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도 동산 담보가 부동산보다 불리하다.

그래서 금융위는 국책은행(기업은행)과 공공기관(신용보증기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3년간 기업은행을 통해 1조원의 동산 담보대출을 제공한다.

이 중 80%(8000억원)는 기계설비, 20%(2000억원)는 재고자산을 담보로 할 계획이다.

신용보증기금은 동산 담보대출의 50% 범위에서 최대 5억원까지 보증을 서줄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3년간 5000억원의 보증을 서면 동산 담보대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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