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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송산리 고분 동성왕릉 가능성 높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왕릉으로 추정되는 공주 송산리 백제고분에 대한 발굴이 5일부터 시작된다.
문공부문화재연구소 송산리 고분군발굴조사단(단장 조유전)은 이날 현장에서 개토제를 올리고 곧이어 고분의 실체를 밝히는 발굴작업에 들어간다.
발굴은 우선 배수로를 찾아내고 배수로를 따라서 무덤의 입구인 연 문에 다다르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문화재연구소는 연 문이 찾아지면 내부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내시경을 투입하는 조사를 할 예정이다.
발굴단은 조사결과 이 고분이 처녀 분으로 도굴 등에 의해 손상되지 않았음이 밝혀지면 유물을 완벽하게 수습하는 방안이 세워질 때까지 내부발굴은 일단 유보한다는 신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송산리 고분은 많은 고고학자들이 왕릉으로 추정하면서 전혀 도굴된 적이 없는 처녀 분으로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기웅 박사(문화재 전문위원)는『발굴고분이 무덤 앞부분에 급경사가 있고 고분으로 볼만큼 높은 봉분 형태를 지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도굴꾼들의 손을 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처녀 분 발굴에의 기대를 밝히고 있다. 김 박사는 또 지난 5∼6월에 있었던 한양대 김소구 교수 팀에 의한「고지자기」탐사에서 무덤내부에 벽돌이 있음이 확인되어 전축 분으로 추정됐으며 벽돌무덤일 경우 왕릉일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말했다.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왕족의 무덤 군으로 학계에 알려졌는데 1호부터 7호까지의 고분 중 1∼5호 분이 할 석으로 축조되었고 벽화고분인 6호 분과 무령왕릉으로 확인된 7호 분이 전축 분이었다.
학자들 중에는 내부의 유물이 모두 없어지고 벽화만 남아 있는 6호 분이 백제 제26대 왕인 성왕의 무덤이 아닌가 하고 그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사람도 있다.
백제의 웅진(공주)시대는 서기 475년 문주왕이 한성에서 도읍을 옮긴 때부터 서기 538년 성왕이 사자(부여)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63년간으로 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 등 5대왕이 통치했다.
6호 분을 성왕의 무덤으로 보는 것은 이 무덤이 합장 묘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무덤 안에는 한사람이 있었던 흔적밖에 없다는데서 유추되고 있다. 성왕은 부여로 도읍을 옮기는 과정에서 전사했다. 성왕은 그 시신 중에서 머리부분을 찾지 못한 채 매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자들은 왕 부부를 함께 매장하려고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가 시신이 완전하지 못하자 성왕의 시신만 송산리 6호 분에 묻고 왕비의 무덤은 부여에 다시 축조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이번에 발굴될 고분이 왕릉이라면 이는 문주왕·삼근왕·동성왕의 무덤 중 하나일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학자들은 무령왕과 가장 가까운 시기인 동성왕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발굴될 고분이 왕릉이냐 아니냐는 발굴이 시작되면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발굴과정에서 맨 처음 확인될 배수로가 벽돌로 되어 있으면 이 무덤은 벽돌무덤일 것이 확실하고 왕릉으로 보아야 한다. 또 배수로를 따라가 연 문을 찾았을 때 무령왕릉과 같이 아치형의 벽돌문이 나오면 왕릉임이 더욱 확실해진다.
왕릉이라면 무령왕릉에서 나왔던 왕과 왕비의 지석, 금관장식과 환두대도·석수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와 백제문화의 찬란한 모습을 다시 한번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 무령왕릉 출토유물과 비교되는 다른 모습의 백제문화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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