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 속에 숨어 있는 소수인종 DNA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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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에선 지난 몇 년 새 유전자(DNA) 검사로 뿌리를 찾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검사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다양한 혜택과 권리를 누리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고교생 매트는 대학 지원을 앞두고 DNA 검사를 했다. 입학 심사 때 소수 인종에게 주는 혜택을 노린 것이다. 그는 부모가 모두 백인이지만 가무잡잡한 피부색 때문에 '혹시 소수 인종의 피가 섞여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조사 결과 그의 DNA 구성은 유럽인 80%, 북아프리카인 11%, 인디언 9%로 나왔다. 매트의 아버지는 "대학에 지원하면서 유전자 정보를 유리하게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백인 여학생은 대학 입학지원서의 인종 선택란에서 '아시아인'을 골랐다. '동아시아인 2%, 유럽인 98%'라는 DNA 검사 결과가 근거다. 그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장학금까지 받았다.

한 흑인 여성은 취업지원서에 자신을 어느 인종으로 표시할지 고민하다가 해당되는 세 개 항목 모두 고르기로 했다. 검사 결과 그에게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인 89%, 유럽인 6%, 동아시아인 5%'의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인디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DNA 검사 결과를 근거로 인디언 부족이 운영하는 카지노의 수익금과 공유재산의 분배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대 사회학과 트로이 더스터 교수는 "최근의 DNA 검사 열풍은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서 오셨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돈과 편의를 얻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같이 '편법'으로 소수 인종에 주어지는 혜택을 받는 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검사업체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있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거나 정부 우대 정책의 혜택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검사를 권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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