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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후진 기어 넣고 전진하려는 정부 일자리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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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간 고용 노동분야 정책은 역대 정부 5년 동안 쏟아질 양 이상 쏟아졌다. 정부의 일자리 공약은 ‘늘·줄·높’(일자리는 늘리고, 비정규직·근로시간은 줄이며, 일자리의 질은 높인다)으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 일자리 공약 ‘늘·줄·높’ #중소기업·비정규직은 고용불안 #대기업·공공부문 근로자 주로 혜택 #정책 성공 위해 근본 수술 불가피

먼저 ‘늘’의 성과를 보자. 올해 만들어진 일자리는 2월(10만), 3월(11만), 4월(12만3000)로 지난해 2월(36만), 3월(46만), 4월(42만)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학자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반면, 고용노동부는 조선·자동차 구조조정 , 경제부총리는 기저효과, 국책연구원은 장기 추세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효과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 3월 부가조사도 2017년부터 하지 않은 상태여서 정부는 최저임금 고용 효과를 하반기에나 알 수 있다고 한다. 내년 최저임금은 다음 달 결정돼야 함에도 말이다. 내년 최저임금도 과학이나 정책이 아니라 정치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올 최저임금을 16.4% 올릴 때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패키지 협상을 해야 했지만, 인상을 밀어붙였다. 급격한 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자 일자리안정기금 2조9000억원을 책정, 4월 말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236만 명의 78%가 신청했다고 홍보한다. 예산 대비 지출액이 9.7%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이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급(日給)이 만연하고 이직이 빈번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을 과다 책정한 측면이 있다. 치밀한 분석에 따라 예산이 편성되기보다 정치적으로 엉성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 달성에 매달리다 보니 후유증 줄이기에 급급했다.

시론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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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의 성과를 보자. 비정규직·근로시간을 줄이는 분야는 그나마 성과가 있는 분야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했고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입법도 성사됐다. 그러나 공공부문 정규직화 때 임금 체계 개선의 핵심인 직무등급제 도입이 노동계 반대로 무산된다면 결국 국민 혈세로 호봉제 인건비 인상분을 감당해야 한다. 민간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사용 사유 제한 규제도 일자리 창출 성과를 대폭 저하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필요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근로기준법 51조에서 3개월 이내로 제한된 탄력 근로 단위 기간을 6개월~1년의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는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루트가 봉쇄되니 기업들은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확대해 탄력근로 효과를 편법으로 확보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사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겹치면서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 노조야 노조 교섭력으로 소득 감소를 막아내지만, 중소기업 조합원들은 소득 감소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이들을 대표하는 업종별·산별 노조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결국 ‘줄’의 성과는 공공부문의 정규직화와 대기업의 근로시간 단축의 제한적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려다 의도치 않게 약자를 해치며, 강자에게 과실이 집중되는 형국이다.

‘높’은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높’을 위해 정부는 ‘비정규직은 나쁜 일자리’ 프레임을 설정했다. 그러나 소수의 일자리 질을 개선하려다 다수의 일자리 파괴와 고용 불안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OECD가 각국 정부에 권고하는 일자리 정책 방향은, 많은 국민에게 보다 좋은 일자리(more and better)를 창출하는 것이지 소수에게 보다 더 좋은 일자리(less for better)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늘·줄·높’ 정책이 성공하려면 근본 수술이 불가피해 보인다. 먼저 모든 고용·노동 정책들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진 기어 상태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칫 후진 기어 상태인데 전진 액셀을 강하게 밟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또 노동 존중 사회가 정책 취지와 달리 조건이 좋은 대기업·공공부문의 노동 존중이고, 그 비용이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전가되지 않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기존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텐센트·알리바바 같은 세계적 IT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감한 지원과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미래 산업 변화에 대한 큰 그림 없이 과거 문제 해결에만 매달려 대증요법식으로 쏟아지는 ‘늘·줄·높’ 정책이 ‘줄·줄·줄’(일자리, 비정규직·근로시간, 일자리의 질 모두 줄인다) 효과를 낳는 상황에서 청년 일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