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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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혜원 신윤복의『풍속도』에는 사대부집 새아씨의 나들이 모습이 자주 나온다. 버들잎이 함빡 물먹은 5월 단오날 연두빛 쓰개치마를 쓰고 몸종을 딸린채 나들이를 가는 이들 여인네의 표정엔 보일듯 말듯 웃음을 머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수줍음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교태 같기도 한 웃음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가면극의 하나인 하회탈「부네」의 미소도 마찬가지다. 은근한 눈웃음이 교태 같기도 하고, 수줍음 같기도 하다.
한국의 여인네는 이처럼 웃음을 절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으로 흘러 나가면 당장 큰 일이 났다.
그래서 고소설『박씨전』에는『여자가 웃다니…』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인직의 신소설에서도『여자가 웃네』라고 신기해 하는 장면이 있다. 모두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관 때문이다.
함부로 웃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사회에서도 금기로 되어왔다. 서양인처럼 감정을 발산시키고 웃음의 표정을 과장시키는 것은 교양인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절제된 희노애락의 표현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행동규범이며 생활윤리였다.
엊그제 범국민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는「모의 올림픽관광」을 실시, 4명의 주한외국인을 김포공항에서 여관에 투숙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제로 체험케 했다. 그 반응은 『올림픽시민으로 너무 무뚝뚝하다』는게 지적되었다.
우선 공항직원들이 정중하기는 하지만 너무 무표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 어느 공항직원 치고 상냥한 나라는 없다. 친절하고 정중하다면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좋을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어느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웃는 웃음은 오히려 어색하다.
문제는 얼마나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손님을 접대하느냐에 달렸다. 물론 거기에 상냥한 웃음이 깃들이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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