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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김정은 새로운 전략…개혁·개방 말고 다른 방법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3대째 후계정권이 북한 땅에 자리 잡게 되었다. 후계자로서의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후계권력 구축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초기 평가가 자연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정권은 곧 붕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평가들이 다수 나온 것이다. 갑자기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얼마 안 있어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의 최고 직책들을 승계한 김정은은 20대 후반의 명목적 세습 권력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서다.

김일성 '자주노선'과 같은 듯 다른 정책 펴 #집권 초기부터 핵실험으로 내부결속 다져 #사회주의 체제 정상화로 권력 공공화 노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러나 집권 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김정은은 ‘자주, 선군, 사회주의’ 통치전략으로 이 같은 우려를 상당히 불식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주를 기치로 내걸면서 6차례의 핵실험과 각종 미사일을 쏘아 올려 군사적 긴장을 스스로 조장하였고, 이를 빌미로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선군정치를 내세워 군부를 장악하는 기민성을 보였다. 처형 또는 잦은 인사 행위로 원로 군부들을 마치 떡 주무르듯이 하면서 꼼짝달싹 못하게 한 것이다.

‘강대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내세워 당적 통제체제 강화로 북한 주민들을 장악해 나갔다. 2017년 12월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스스로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어 그의 대외적 지도력조차 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은 ‘자주, 선군, 사회주의’ 통치전략으로 ‘적대세력의 도전’이나 ‘긴장된 정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세습 권력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북한의 세습 권력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군사적 긴장조성을 정당화하는 ‘자주’와 ‘선군’을 버리고 경제발전을 위해서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개혁개방체제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히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김정은이 이 같은 통치전략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자주’는 결코 김정은 시대 고유의 이념 또는 전략이 아니다. 이는 이미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 때부터 견지되어 왔던 것이다. 김일성은 자주노선을 사상화한 주체사상으로 대내외적 위협을 제거하고 일인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일성은 주체(자주)를 앞세워 내부적으로 각종 파벌을 제거하였다.

김정은이 1일 부인 이설주와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인민복을 입었던 이전과 달리 김정은은 양복과 넥타이, 검은 뿔테 안경 차림이었다.  [사진제공=노동신문]

김정은이 1일 부인 이설주와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인민복을 입었던 이전과 달리 김정은은 양복과 넥타이, 검은 뿔테 안경 차림이었다. [사진제공=노동신문]

대외적으로도 중국과 구소련과 같은 외부적 간섭을 배제하면서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 외부 사상조류를 차단하는 데 자주를 핵으로 하는 주체이념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김정은도 대내외적인 ‘적대세력의 도전’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자주’ 이념 또는 정책을 표방해 오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초기부터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핵실험을 거듭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자주를 통한 내부적 결속을 다지고자 하였다.

집권하자마자 김정은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초래하면서까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2012년 4월 실패, 12월 성공)와 이듬해 3차 핵실험(2013년 2월)을 감행하였고 정전협정백지화, 기본합의서 불가침합의 불이행 선언 등을 통해 ‘반미대전’이라는 가상적 전투상황을 만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북한은 2012년 2월 만수대창작사에 말을 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세웠다. 만수대창작사는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을 제작한 곳이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2012년 2월 만수대창작사에 말을 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세웠다. 만수대창작사는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을 제작한 곳이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의 인위적인 군사적 긴장조성 정책은 그의 선군정치를 정당화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장악해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하는 믿음에 근거해서다. 군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보통국가들의 대통령이 갖는 군통수권만으로는 안되며 최고 지도자 스스로가 군 최고지휘관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선군 지도자 논리다.

김정은은 세계 최강국 미국과 맞서 싸우는 군사 최고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그는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여 벌이고 있는 것이 ‘반미대전’이며, ‘반미대전’을 진두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천출명장’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김정은은 선군정치를 계승해 탁월한 군사능력을 겸비한 ‘군사가’라는 인식을 당ㆍ정ㆍ군ㆍ인민대중에게 심고자 했다. 김정은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핵 담판’을 벌여 미국을 굴복시키고 승리로 이끌었다는 강대한 군사적 리더쉽을 인위적으로 제고해 나가면서 그의 정권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이렇게 볼 때, 김정은은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핵과 미사일, 그리고 여타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적 판단이 가능해 진다. 오히려 그는 이미 개발한 핵미사일 능력을 기반으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지렛대로 삼아 대미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자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더해 김정은은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하기보다 더욱 강화하여 주민에 대한 통제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6년 만에 7차 당 대회를 개최한 이후 정치국회의, 전원회의 등을 통한 정책결정 활동을 정상적으로 펼쳐가는 노력을 강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7차 당대회를 통해서 김정은은 제 1비서에서 당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당의 유일영도자로 등극하였다.

북한 김정은 7차 당대회 개회식 연설 [사진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7차 당대회 개회식 연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은 노동당의 당위원장, 부위원장체제 개편으로 ‘노동당의 주인’이 된 셈이다. 김정은은 일인지배체제가 완성된 당의 강화로 국가, 군대, 인민대중을 획일적으로 통제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그의 유일권력체제의 공고화를 기하고자 하였다.

김정은이 노동당 조직을 적극 침투시켜 각종 ‘속도전’과 ‘70일 전투’ ‘200일 전투’ ‘만리마 전투’ 등의 기치로 주민들을 몰아붙여 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당의 전투적 호소를 높이 받들고 각지 당원들과 근로자들, 일꾼들은 당중앙위원회 뜨락에 운명의 핏줄을 잇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 나가”자고 독려함으로써 당의 인위적 통제와 지도를 통한 ‘자력갱생’ 폐쇄정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 25일 선군절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 찾는 북한 군 장병, 근로자, 청소년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해 8월 25일 선군절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 찾는 북한 군 장병, 근로자, 청소년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은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제일주의”(2016년 신년사)를 내세웠다. 그는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강의 길만이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존엄을 살리고 혁명과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길”이라 강조해 나가면서 개혁ㆍ개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나선 것이다. 김정은은 “자기의 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자기의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건설 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여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력갱생’적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

이후에도 김정은은 북한의 ‘자력갱생’정책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면서 개혁이나 개방이 아닌 당적 통제 강화로 사회주의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에 매달릴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경제건설에 매진할 것이라 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혹자들은 이제 김정은도 중국과 같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정책 과정을 답습하기보다 사회주의 체제 정상화를 통해서 노동당 권력이 보다 강력하게 통제하는 사회주의 수령 유일지배체제를 지속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장밋빛 판단에 근거해서 우리의 대북 안보체계를 서둘러서 변화시키거나 약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석좌교수 겸 통일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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