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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83호 30면

영화 ‘원더스트럭’ 

초입부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영화의 강한 메타포다. 데이비드 보위(1947~2016)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 1969년 보위가 직접 작사ㆍ작곡한 이 노래는 그해 7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직전에 발표됐다. 영국 BBC는 당시 달 착륙을 중계하면서 이 노래를 틀었다. 노래는 ‘그래비티’(2013)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2017)를 비롯해 숱한 우주 영화의 OST로 사랑받기도 했다.

우주까지는 아니지만, 원더스트럭의 주요 테마가 시간 여행이다. 1927년의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몬스)와 1977년의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의 뉴욕 여행기를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5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있지만, 여행의 목적지와 방향은 같다. 로즈는 폭압적인 아빠에게서 벗어나 유명 배우인 엄마를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교통 사고로 엄마를 잃은데다가 벼락을 맞아 청력을 잃게 된 벤은 생전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아 떠난다. 자신이 우주를 좋아하는 까닭이 아빠가 천문학자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던 소년은 그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다.

생의 뿌리를 찾고, 기원을 알고자 하는 여행의 단서는 아주 조그맣다. 로즈에게는 엄마의 뉴욕 공연 소식이 실린 신문 기사가, 벤은 엄마의 방에서 발견한 책 ‘원더스트럭’ 속 책갈피와 거기 적힌 글귀가 단서다. 뉴욕에 있는 킨케이트 서점을 홍보하는 책갈피 뒷면에는 아빠일지도 모르는 대니라는 사람이 남긴 메모가 있다. 벤이 뉴욕 킨케이트 서점을 찾아 떠나게 된 이유다. 존재하는 시간대는 다르지만, 틀에 갇히기보다 스스로 알고자 하는 삶을 택한 두 아이의 여정은 비슷하게 닮아 있다. 마치 아폴로 11호가 지구에서 출발해 달에 착륙하듯, 아이들도 어른들이 구축해 놓은 세상을 뚫고 뉴욕으로 향한다.

반세기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뉴욕은 급변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색의 유무다. 로즈의 시대는 흑백이고 벤의 시대는 컬러다. 무성흑백영화시대였던 1920년대 감성을 살리기 위해 촬영 감독은 필름 카메라를 썼다고 한다. 대사 없이 배경음악과 배우의 표정만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반면 1970년대는 컬러 TV의 시대다. 벤이 도착한 뉴욕은 펑크룩을 입은 사람들로 알록달록하고, 영화의 배경음악마저 펑키하다. “뉴욕이라는 배경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다른 두 시간대를 보여주려면 영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 엄청난 모험이 필요했다”는 헤인즈 감독의 말대로 그는 시대별 뉴욕의 모습을 여러 고증을 거쳐 고스란히 재현시켰다.

청각장애를 가진 소년과 소녀의 뉴욕 모험기는 자극적인 대사와 영화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다소 지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가 멋진 점은 대사가 아닌, 영화적 언어로 빛을 발한다는 것”이라며 “영상ㆍ편집ㆍ음악 등 각종 표현 수단이 모든 영화적 요소 덕분에 탄생한 영화이고, 아주 영화다운 영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기원을 찾는 행위는 등장 인물과 뉴욕이라는 도시뿐 아니라, 영화 자체에서도 중요한 테마다.

어린 소년과 50년 뒤 할머니가 된 소녀는 결국 모든 것이 축적된 자연사 박물관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순간 1977년 당시 실제로 있었던 뉴욕 대규모 정전 사태가 컬러 TV의 시대를 1920년대 흑백 영화의 시대로 돌려버린다. 암흑천지 같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소년과 할머니는 별을 바라본다. 영화는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듯하지만 메시지가 꽤 직설적이다.

참고로 로즈 역을 맡은 밀리센트 시몬스는 실제로 청각 장애를 가진 배우다. 최근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레건 역을 맡았던 그는 영국 가디언에 의해 ‘2018 주목해야 할 신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내뱉지 못하는 모든 소리를 품고 있는 듯하다. 첫 영화에서 대단히 흡입력 있는 눈빛 연기를 선보인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감독: 토드 헤인즈
주연: 오크스 페글리
밀리센트 시몬스
줄리안 무어
등급: 15세 관람가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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