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갇힌 삼성 스피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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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삼성생명 공격의 핵인 안 바우터스는 마음이 바쁘다. 오는 19일부터 여자농구 유럽선수권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림픽 지역예선까지 겸하는 중요한 대회다. 바우터스는 조국 벨기에를 위해 대표로 나가야 할 처지다. 하루라도 빨리 챔피언결정전을 끝내고 귀국하길 바란다.

이 얘길 전해들은 우리은행 박명수 감독은 "쉽게 가도록 놔두지 않겠다. 마지막까지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라며 '끈질긴 승부'를 장담했다. 빈 말이 아니었다.

우리은행은 9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2003 여자농구 여름리그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3차전에서 캐칭과 김지현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생명을 83-75로 꺾고 2승(1패)을 먼저 올렸다.

초반 기싸움이 관건이었다. '스피드'의 삼성생명과 '고공전'의 우리은행, 색깔이 전혀 다른 두팀이었다. 경기 전 박감독은 "기선을 제압한 팀이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반전 삼성생명은 무기력했다. 정규시즌 내내 무적을 자랑하던 국가대표 4인방의 움직임은 무거웠다. 변연하(28득점) 혼자서 전반에만 3점포 4개를 꽂으며 20득점으로 고군분투할 뿐이었다. 바우터스는 물론 이미선.박정은.김계령 등 나머지 주전들은 4득점 이하에 그쳤다.

반면 우리은행은 캐칭(33득점)과 김지현(13득점), '쌍두마차'로 내달렸다. 김지현이 3점포로 맞불을 놓았고, 캐칭은 골밑을 뚫으며 상대 수비진을 휘저었다. 우리은행은 45-31, 무려 14점차로 전반을 마쳤다.

삼성생명의 엔진은 한발 늦게 달아올랐다. 전반 캐칭의 수비에 막혀 3득점에 머물렀던 바우터스는 캐칭의 골밑 슛을 공중에서 내리치는 등 3쿼터에서만 13득점하며 추격의 선봉에 섰다. '독기'를 품은 삼성생명은 3쿼터에서 58-61까지 쫓아왔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속공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악착같이 리바운드를 잡아낸 캐칭의 패스는 빨랐다. 이종애와 홍현희는 순식간에 상대 골밑으로 내달리며 속공을 마무리지었다. 막판 집중력이 빼어난 삼성생명도 어쩔 수 없었다. 초반 실점이 너무 컸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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