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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으로 세계 휩쓰는 신박한 커플

중앙일보

입력

팀 만들고 4년 만에 국제 콩쿠르 4개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과 박상욱. 각자의 성을 따서 '신박 듀오'란 이름을 만들었다. 오종택 기자

팀 만들고 4년 만에 국제 콩쿠르 4개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과 박상욱. 각자의 성을 따서 '신박 듀오'란 이름을 만들었다. 오종택 기자

오른쪽 둘째 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나 한동안 피아노를 못쳤던 피아니스트. 15세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왔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던 연주자. 두 피아니스트가 만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피아니스트 신미정(38)과 박상욱(28)은 2013년 신박 듀오를 결성했다. 이름마저 간단한 이 팀은 경쾌한 속도로 4년 만에 국제 콩쿠르 4개에서 우승ㆍ준우승을 했다. 2013년 로마 국제 콩쿠르 2위, 2015년 ARD 국제 콩쿠르 2위에서 시작해 이듬해 몬테카를로 콩쿠르 1위, 지난해 슈베르트 콩쿠르 우승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피아노 듀오팀이 이런 성적을 거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둘은 피아노 두 대를 나눠서, 혹은 한 대를 함께 연주하며 콩쿠르를 정복하고 세계 무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 40~50회 연주를 한다.

신박 듀오의 연주는 무엇보다 좋아서 하는 태가 난다. 모차르트ㆍ브람스ㆍ라벨, 어떤 시대의 작품을 가지고도 거의 모든 음을 세밀하게 만져서 내놓는다. 기술적인 완벽 대신 음악적인 황홀함을 전하려 노력하는 점이 분명히 다가오는 연주다.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작곡가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갔다” 또는 “둘의 호흡이 완전한 일치에 달했다”는 평을 내놨다고 한다.
이들의 호흡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무엇이 이들을 다른 듀오팀보다 우월하게 만들었을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결을 추정해본다.

연주가 감사하다

신미정은 베를린 만하임 음대에 석사과정 시험을 보러가자마자 손가락을 다쳤다.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서 굽혀지지도 않았다. 한동안 피아노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와 선교사를 꿈꿨다. 그러던 중 성악을 공부하는 남편을 만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다시 유학을 떠났다. 2009년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는 무대가 두려웠다고 했다. 악보를 잊어버리거나 자신감 없이 연주하고 내려오곤 했다.
박상욱은 피아노 전공을 늦게 결정했다는 다급함에 빨리 유학을 떠났다. 15세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하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스무살에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까지 벌어야 했다. 다시 피아노만 치고 싶었다.
그때 만든 신박 듀오가 두 피아니스트의 숨통을 틔웠다. 듀오 활동을 하면서 둘은 무대 위에서의 기쁨을 다시 만끽했다. 신박 듀오의 연주가 치열할 정도로 자주 달아오르는 이유는 무대에 대한 절박함이다.
박상욱은 “듀오 연주를 할 때는 독주보다 120% 정도 음악이 잘 나온다”고 했다. 애타게도 하고 싶었던 연주기 때문에 듀오 결성 후에는 여름에 더위를 먹어가며 연습을 했다.

오래된 멤버십

신박 듀오는 5년된 팀이지만 둘이 만난 건 10년 전이다. 신미정은 “둘 다 빈에서 유학을 하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친해졌다”고 했다. 끼니 때울 돈이 없어 하루씩 번갈아 밥을 사주곤 했다. “듀오 팀을 만들 생각은 못했고 친누나와 동생처럼 힘든 인생을 같이 헤쳐나갔다.”(박상욱)
둘이 처음으로 함께 연주한 건 빈의 한국 여성 합창단 행사에서였다. 각각 독주자로 초청됐다가 이럴 바에야 함께 연주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한 피아노에서 네 손으로 치는 생상스 ‘죽음의 무도’를 이틀 연습하고 무대에 섰다. “관객 반응이 놀라웠다. ‘도대체 얼마동안 호흡을 맞춘 팀이냐’는 질문을 들었다.”(신미정)
그 호흡이 아까워서 듀오 활동을 같이 했다. 박상욱은 “신기할 정도로 음악이 잘 맞았다”고 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할 때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어떤 부분을 바꿔서 치면 상욱이도 똑같이 받아서 쳐준다.”(신미정) 둘은 “듀오 팀을 만들기 위해 만난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따로 맞출 필요없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공부

오스트리아ㆍ독일에도 피아노 듀오를 공부할 수 있는 학교는 드물다. 신미정은 “독일 로스토크 음대에 유일하게 듀오 과정이 있다”고 했다. 둘은 이 음대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이미 듀오 경험이 많은 교수들에게 배우다보니 단순히 피아니스트 두 명이 할 수 있는 것보다 깊이있는 해석이 나온다.”(박상욱) 피아니스트 두 명의 생각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세계를 만드는 것이 신박 듀오의 꿈이다.
13일 한국 연주의 제목을 ‘1회 정기연주회’로 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박상욱은 “피아노 듀오로 얼마나 연주할 게 많고 이룰 수 있는 수준도 높은지  계속해서 보여주고 싶다”며 “슈베르트가 네 손을 위해 쓴 곡으로만 CD 12장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악기가 맞붙기 때문에 세부적인 조율에 품이 많이 든다. 때로는 합심해서 음악의 덩치를 키우고, 많은 경우에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신미정은 “무엇보다 내 연주를 하면서 상대방이 낼 소리까지 상상해야 하기 때문에 서너배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2015년 ARD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브람스 소나타를 포함해 리게티·라흐마니노프·라벨을 들려줄 예정이다.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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