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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덩치에 맞는 책임감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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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기업의 수난 시대다. 사회공헌기금 8000억원을 내놓은 삼성에 이어 현대차가 코너에 몰렸다. SK.두산 사례까지 떠올리면 착잡한 심정이다. 윤리경영.도덕경영.투명경영, 그 숱한 경영혁신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는지 허망할 지경이다.

국내 대기업의 덩치는 커졌다. 양극화 걱정이 나올 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4대 그룹 매출액을 합하면 노르웨이.그리스를 웃돌고, 인도네시아에 버금갈 정도다. 그러나 허약한 체질이 문제다. 검찰이 손만 대면 하나같이 비틀거리는 형국이다. 기업을 흔들면 경제가 위축된다고,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대놓고 말하기가 무안할 지경이다.

지금의 문제는 반기업 정서라기보다 반기업가 정서가 핵심이다. 기업 오너들의 의식이 국민의 눈높이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재계가 내놓는 논리도 수긍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들은 "외국인 지분이 과도해 알짜 기업이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헤지펀드가 주식을 매집해 거액을 챙긴 것은, 대부분 그 기업 경영진의 비리가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선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정부를 압박하기가 무색하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경기 변동에 대비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황 때 오히려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호황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임금 부담을 줄이자는 목적일 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대기업의 역할은 막중하다. 생산.투자.고용 등 국가경제 전반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요즘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대기업들은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신뢰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그런 바탕이 있어야 국가경제에의 기여나 사회공헌 등도 더욱 빛이 난다.

주요 그룹의 외국인 보유 지분은 50%를 넘는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대기업을 감싸주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기업 스스로 유일한 보호막인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업이 지탄받으면 안 된다. 지탄은 총탄, 폭탄보다 무섭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GE처럼 웬만한 국가보다 매출액이 큰 기업은 영업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외교도 필요하고 사회복지에도 나서야 한다. 덩치에 맞는 책임감이 장기적인 생존을 도모하는 길이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어페어' 편집장의 충고는 우리 대기업들도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