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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된 사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미국에서는 색다른「쓰레기 재판」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빌리·그린우드」라는 사나이는 4년 전 집밖에 쓰레기를 버렸다. 그 쓰레기더미 속에는 쓰다버린 면도날과 코카인찌꺼기가 남은 빨대, 마약전과자들의 이름이 적힌 전화요금 청구서 등이 섞여있었다.
경찰은 이 쓰레기를 단서로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그린우드」의 집을 뒤져 마약을 찾아냈다. 그가 마약거래혐의로 체포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린우드」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영장 없이 남의 집 쓰레기를 뒤지는 것은 제4차 수정헌법의 부당한 조사 및 체포금지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이 주장에 대해 『이유 없다』고 6대2로 기각했다.
이 판결에 대해 민권운동가들은 안 그래도 위협받고 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욱 침해받게 되었다고 거센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부 판사들도『남의 쓰레기를 뒤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문명인의 행위개념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찮은 쓰레기 하나를 가지고도 떠들썩하게 프라이버시 논쟁을 벌이는게 미국사회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민 개개인의 모든 자료가 입력되는 행정전산망을 가동시킨다고 한다.
이 행정망에 입력되는 정부업무는 우선 1단계로 주민관리, 부동산, 자동차, 통관, 국민연금, 고용 등 6가지다.
한 사업에는 보통 70∼1백여개의 관련 항목이 들어가는데, 특히 주민등록관리항목에는 18세 이상 전인구의 가족, 직업, 재산등신상명세가 상세히 기록된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법적 뒷받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는 컴퓨터의 대량 기억에 노출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이 만들어진지 오래다. 85년에 내한한「토플러」(『제3의 물결』저자)도 정보화시대의 도래와 함께「개방된 사생활」의 보호책이 시급하다고 말한바 있다. 행정의 과학화, 효율화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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