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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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대북방 경제관계는 그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놀랍기도 하고 한편 우려되는 점 또한 적지 않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공산권국가들과의 경제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최근 누구나 실감한다.
올 봄 서울과 헝가리에 상호 무역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유고에도 우리무역사무소가 문을 여는가 하면 모스크바·동구 공산국가에서 우리상품전이 열리고 중국 (중공)과는 큼직큼직한 합작공장건설 계획이 잇달아 타결되었다.
중국은 물론 동구 공산국가들로부터 민간통상 사절단의 내왕이 빈번한 가운데 서울에서는 한-동구경제협력에 관한 주제의 세미나가 열려 공산국가들의 학자·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우리측에서도 공산국가들에 민간 기업인들이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이 요즈음 숨가쁘게 일어나 국내에서는 대 공산권 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공산권국가들과의 경제거래확대는 환영할만한 것으로 생각되면서도 지금 조성되고 있는 대 공산권 붐이나 진출러시가 과연 바람직스러운 방향으로·구체화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북방정책은 비공식적 민간경제관계에서 시작되어 공식적인 정부차원의 정치, 외교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1차 적으로는 민간경제인들의 성숙된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나 민간경제계는 우왕좌왕하고 있으며 심지어 공산권 시장을 겨냥한 과당경쟁 현상은 중동의 해외건설시장 개척당시와 비슷하다고 들린다.
민간 기업들은 중국이나 동구가 황금시장이나 되는 것처럼 한발 늦을세라하고 지나친 경쟁을 벌여 서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대공산권 경제관계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우선 해당 민간기업이 해야할 일이 많겠지만 정부에서도 뒷짐지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해외건설의 경우처럼 정부에서 규제하거나 깊이 개입하여 또 다른 왜곡을 초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대공산권 진출의 올바른 방향제시는 있어야한다.
공산권에 관해서는 오래 금기해온 탓으로 민간경제계에는 체계적인 지식과 정보가 미흡하여 어느 단계까지 정부의 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거래리스크 (위험)를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와 거래를 하고 있거나 거래를 트려는 공산국가들이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과당경쟁을 벌일 만큼 변화된 단계에 와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겁없이 달려드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좀 생각해 볼일이다.
서울에 온 공산권경제전문가나 학자들이 인터뷰나 세미나를 통해 들려준 충고 비슷한 이야기도 종합해 보면 교훈적인 내용이 많다.
중국에서 온 교포학자는 교역에 앞서 정치, 경제적 특수성 연구가 선행되어야하며 중국에는 한국연구가 대단한데 한국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의미 있는 이야기다.
흔히 중국을 방대한 상품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는 또한『중국은 수출을 위한 투자를 원하고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상식적 사고와 큰 차이가 있는 주장이다. 어느 동구권경제인도『우리는 한국의 수출주도 경제를 배우는데 주요 목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시장」 으로 이들 공산국가들을 여기고 있다. 북방경제관계의 나침반이 될만한 정부의 지침서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좋을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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