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평범한 당신이 바로 주인공 … 몸속 세포들이 말하네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이동건 작가가 자신을 그린 캐리커처. 유미의 세포들 뒤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이다. [그림 네이버]

이동건 작가가 자신을 그린 캐리커처. 유미의 세포들 뒤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이다. [그림 네이버]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 모두가 특별함을 꿈꾸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평범할지언정, 아니 평범함이야말로 응원을 부르는 공감의 바탕이 되곤 한다. 매회 3만개의 ‘좋아요’와 1만개 댓글이 달리는 웹툰, 바로 ‘유미의 세포들’ 얘기다.

웹튠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작가 #공감 부르는 30대 여성의 연애담 #응큼·이성·판사세포 등 아웅다웅 #매회 ‘좋아요’ 3만, 300회 눈앞에 #섬세한 묘사, 여성작가로 오해도

주인공 유미의 연애사를 그리는 이 웹툰은 설정이 재미있다. 모든 사람의 내부에는 여러 세포가 있고, 이 세포들의 의견 조율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상상력이 이목을 끈다. ‘응큼 세포’가 야릇한 생각을 하면 ‘이성 세포’가 이를 자제시키고, 밤만 되면 자장가를 부르는 ‘자장 세포’와 배고플 때 제어가 되지 않는 ‘출출 세포’가 자주 갈등을 겪는 식이다.

이동건 작가. [사진 네이버]

이동건 작가. [사진 네이버]

2015년 7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은 그에 앞서 2015년 4월부터 시작해 주 2회 수요일과 토요일에 네이버에 연재를 하고 있다. ‘유미라는 평범한 여성의 연애사’라는 평범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네이버 인기 웹툰의 2~3배 매니어(좋아요 및 댓글 수 기준)층이 형성돼 있다. 단행본으로는 지난해 11월 1~3권에 이어 최근 4~6권이 나왔다.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약 300개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그 중 쉽게 나온 에피소드는 5개밖에 안 된다”며 “그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감정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자친구 때문에 흔들리는 유미에게 마음 속 세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미 한 명“이라고 일러주는 장면. [그림 네이버]

남자친구 때문에 흔들리는 유미에게 마음 속 세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미 한 명“이라고 일러주는 장면. [그림 네이버]

독자들은 웹툰 속 유미를 응원하며, 스스로 힘을 얻는다. 종종 선택에 앞서 우물쭈물했던 유미가 이야기가 나아갈수록 주체성을 되찾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유미는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자기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로 두다가, 점차 스스로를 찾아간다. 194화에 나온 에피소드. 남자친구 구웅이 자신을 떠날까 전전긍긍하던 유미는 꿈속에서 마음속 게시판에 ‘웅이는 운명이다’라고 적으려 한다. 이때 나타난 게시판 관리자 세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상한 메모 붙이면 내가 치워야 해. 미안하지만 웅이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야.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 독자들은 “이게 정답이다.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고 단 한 명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인 것(red***)”과 같은 댓글로 큰 공감을 드러냈다.

이 작가는 “특별함을 꿈꾸지만 특별하지는 않고, 강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현실 속 우리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유미에 끌리는 게 아니겠냐”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캐릭터라기보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라서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상 유미를 편드는 판사 세포. 이 작가는 판사 세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림 네이버]

항상 유미를 편드는 판사 세포. 이 작가는 판사 세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림 네이버]

유미가 주체성을 찾고, ‘1순위’에 자기 자신을 두는 데 있어 항상 힘이 되는 세포는 ‘판사 세포’다. 판사 세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미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이 작가도 판사 세포를 가장 좋아한다. 이 작가는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며 “어떤 순간이 와도 유미 편을 들어주는 판사 세포를 종종 떠올린다”고 말했다.

통상 웹툰 작가들은 ‘세이브 원고’를 준비해둔다. 제때 마감을 못 할 경우에 대비해 원고를 미리 그려놓는 것이다. ‘미리 보기’ 결제를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로도 삼는다.

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은 세이브 원고가 없다. 이 작가는 “세이브 원고를 갖고 있던 시기도 있었지만 더 잘 만들려는 욕심에 자꾸 뜯어고치게 되더라”며 “세이브 원고가 없어 마감 전날 속이 두 배로 타들어 가지만 독자들의 의견과 반응을 빠르게 녹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미가 남자친구 구웅에게 접근하려는 친구 서새이를 막고 시원하게 쏘아붙이는 내용이 담긴 회차에는 2만 8000여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유미의 세포들’은 여성의 심리를 위트있게 표현하는 동시에 여성이 현실에서 참아야 했던 답답함을 시원하게 대변한다. 그래서 아직도 작가가 여성인 줄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작가는 “남녀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남녀가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가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요즘,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쉬울 리는 없다. 이 작가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우선 ‘내가 유미라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고, 다음으로는 ‘그 감정을 아내가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얘기할까’ 생각해본다. 이 작가는 “‘무슨 남자가 술을 못 마셔?’‘축구 안 좋아한다고? 한국 남자 맞아?’ 이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나 역시 굉장히 불편해진다”며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하려는 성향이 작품에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30대 여성의 표현 방식을 잘 담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미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 작가는 “어떤 사건을 접한 뒤 누군가는 자신감과 의욕을 잃어버리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한층 더 성장한다”며 “유미의 경우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그에게 부여된 유일한 임무였다. 나도 유미가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