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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무례한 음악은 필요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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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아트팀 기자

김호정 아트팀 기자

26년 된 음악상이 사라졌다. 독일음악산업협회(BVMI)가 1992년 제정한 에코(Echo)상이다. 그동안 마돈나, 본조비, 아델 같은 가수가 받았고 클래식·재즈로도 확장한, 독일판 그래미에 비견될 권위 있는 상이었다. 그런데 “브랜드가 손상돼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며 25일 주최 측이 폐지를 결정했다.

올해 힙합 부문에서 상을 받은 2인조 독일 래퍼 ‘콜리가와 방’의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음반의 제목은 ‘젊고, 잔인하고 핸섬한’이고 노래 제목은 ‘0815’다. 문제가 된 가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자보다 근육질인 몸” “나는 화염병으로 또 홀로코스트를 한다”는 부분이었다. 지난해 20만장 이상 팔린 이 음반이 후보로 선정됐을 때부터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이달 12일 베를린의 시상식 무대에서 유대인 학살을 희화화한 이 노래를 불렀다.

왜 음악인가 4/30

왜 음악인가 4/30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같은 날 시상식 무대에서도 공개적인 비판이 나왔다. 어떤 음악가들은 에코상을 반납했다. 마리우스 뮐러 웨스턴하겐이라는 독일 대중음악가는 그동안 받았던 상 7개를 몽땅 돌려줬다. 문제가 커지자 ‘콜리가와 방’은 반유대주의 캠페인에 10만 유로를 기부했지만 비판은 계속됐다. 아마 시상식 전에도 문제를 알았겠지만 버텨왔을 주최 측은 여론의 뜨거운 포격 끝에 손을 들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음악가의 자유라 판단했지만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코상 폐지는 예술적 자유가 사회적 감수성에 밀리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다. 웬만한 잘못은 덮어주고도 남던 예술성이란 가치는 이제 힘이 별로 세지 않다. 인권, 양성평등, 역사적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예술성·음악성과의 대결에서 승리한다. 내용은 불편하지만 음악이 혁신적이고 듣기 좋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가사는 잘못된 내용으로 쓰였지만 이미 20만장이나 팔린 음반인데 별문제 있겠느냐는 추측도 틀렸음이 증명됐다.

에코상 논란이 주최 측의 ‘심심한 사과’ 정도로 끝난 게 아니라 아예 폐지됐다는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생각 없는 음악, 또는 무례한 예술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시대가 왔다. 26년 동안 잘 해왔던 권위 있는 음악상도 젊은 래퍼의 생각 없는 가사 두 줄로 보름 만에 사라진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청중은 이제 악하고 무신경한 음악에 대한 관용이 없다.

김호정 아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