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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김정은 도보다리 밀담 말미에 "발전소" 언급 포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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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정상이 작은 테이블을 놓고 단둘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심각한 대화 내용은 단 1초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손때 묻지 않은 비무장지대에서 들리는 새 소리 속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표정만 무성영화처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도보다리 회담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4·27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판문점 선언이 아닌 44분간의 도보다리 회동이란 분석이 나올 정도다.

문 대통령·김정은 어떤 대화 했나 #북 핵폐기 후 전력 문제 논의 가능성 #산책·생중계 수용은 김정은 결단 #청와대 “내용, 트럼프에 전달될 것”

도보다리 회담은 처음에는 단순한 친교 행사로 기획됐다. 동선에 제약이 있는 판문점에서 두 정상이 할 수 있는 행사는 짧은 산책이 유일했다. 이런 일정을 준비하던 조한기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 사전답사단이 현장을 둘러본 후 이 산책을 휴식 차원의 차담으로 이어지는 일정으로 북한에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44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김상선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44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김상선 기자]

그러나 북한 회담 실무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산책 자체에도 반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남측으로 넘어온 상황에서 경호 인력을 모두 물리는 것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또 김 위원장이 비포장길을 오래 걷는 모든 과정이 노출되는 데 대한 거부감도 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모두 수용한 게 사실상 김 위원장이라고 한다. 차담·산책 아이디어는 북한의 의전을 책임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고, 결국 회담 전날인 26일 오후 일정에 응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산책과 차담에만 동의했다. 생중계는 합의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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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차담과 산책에 응한 북한에 생중계도 해야 한다고 계속 설득했고 북한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생중계 아이디어는 권혁기 춘추관장과 이주용 행정관이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처럼 산책과 차담에 이어 생중계까지 적극 추진한 것은 두 정상의 만남이란 극적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당초 청와대 내에서도 양 정상이 30여 분간 얼굴을 맞대고 앉아 대화를 나눌지 예상하지 못했다. 44분간의 산책과 대화에서 두 정상이 어떤 말을 나눴는지는 두 정상 외엔 아무도 모른다. 대화 내용은 기록도 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 내용은 오직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만 기록돼 있다”며 “청와대 내 최고 핵심들에게는 대화 내용을 공유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과의 논의에서 충분한 의사 전달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정상이 이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날 문 대통령이 산책을 마치고 김 위원장과 함께 평화의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메라를 통해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비밀 대화에서 비핵화 이후 북한의 전력에 대한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발전소 문제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 적이 있다. 당시 대화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미국을 제외한 전력 대책을 요구했다.

김정일은 “자주성 있게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면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로 국한해서 하자”며 “(남측에) 자주성이 없다고 하면 너무 인격을 모욕하는 것 같은데 좀 이렇게 눈치 보는 데가 많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다. 그리고 친미 국가라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며 “‘미국을 제치고 우리가 경수로를 짓자’고 말로 하니까 안 된다고 해서 보고서를 받았는데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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